언론보도 [민주신문] [이원두 칼럼] '1천억 실패할 연구'에 담은 창조적 첫걸음 작성일 26-03-31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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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연구에는 세 가지 유형이 있다고 어느 역사학자는 설파한다. 실증적 접근, 이론적 접근 그리고 문학적 접근. 문학적으로 역사 연구에 접근하는 것이 역사소설이다. 역사소설은 픽션 우선이기 때문에 '역사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는다. 그래도 역사 연구, 또는 과거에의 접근 방법의 스코프를 넓히는 효과가 작지 않다. 이는 역사 연구뿐만 아니라 과학 분야도 마찬가지다. 가령 우주론을 포함한 물리학에서도 실증적 연구와 이론적 접근이 엄연하게 존재한다.
당연히 문학접근도 큰소리를 친다. 이른바 공상과학 소설은 단순히 독자의 흥미만 자극하는 것이 아니라 과학계에도 '황당한', 그러나 충격에 가까운 자극적인 요소도 있다. '해저 2만 리'의 쥘 베른이 제시한 잠수함 노틸러스는 결국 원자력 잠수함으로 현실이 되었다. 또 15세기 레오나르도다빈치는 하늘을 나는 꿈을 실현할 비행기 설계를 남겼다. 비록 동력 확보방법(엔진)이 없어 '그림의 떡'이 되었으나 현재의 헬리콥터도 그의 아이디어다. 이처럼 황당무계하게 보이는 '과학에 대한 문학적 접근'인 SF소설은 새로운 창조의 단서가 된다.
지금까지 우리 학계는, 정부도 마찬가지지만 '성공하는 연구'에 집중했다. 성공률 100% 또는 99.5%는 알려진 이론과 상식을 바탕으로 하여 '새로운 것'을 찾아 나섰기에 가능한 성과다. 쥘 베른이나 레오나르도다빈치와 같은 발상은 들어설 공간이 없으며, 따라서 '환상의 잠수함'인 노틸러스나 근육의 힘으로 하늘을 날아보자는 비행기 설계도 기대할 수 없다. 100% 성공하는 연구는 기존 기술의 개량에 지나지 않는다.
서울대학교가 1천억 기금으로 '실패할 연구'에 도전하는 'SNU 그랜드 퀘스트 이니셔티브'를 발족시킨 것은 우리나라도 이제는 '모방'이 아니라 '창조'에 나섰음을 의미한다. 당장 공대생을 대상으로 싱크홀 예측장치를 땅속에 심을 수 있을까?, 창문이 햇빛을 모우는 양을 계산할 수 있을까?, 언어체계를 공부하지 않고도 소리만으로 언어를 이해할 수 있는 귀를 만들 수 있을까? 등 세 과제를 선정하여 20명에게 3년간 6천만 원 지원을 결정했다.
실패는 패배가 아니라 새로운 자산임을 깨닫도록 독려하려는 것이 목적이다, 실패과정의 공유는 성공의 결과물 못지않은, 때로는 더욱 값진 자산이며 실패의 자산가치를 평가할 수 있어야 비로소 '지능의 선진화'와 '호기심의 진화력(進化力)'차원을 높일 수 있다는 점에서 획기적인 도전이다.
성공이든 실패하든 연구 주제 설정은 호기심에 근거하는 것이 상례다. 그 배경에는 당연히 지적 모험심이 작용한다. 물리학자, 특히 우주론을 전공하는 물리학자가 SF소설이나 드라마 영화에 심취하는 배경이다. 두 세대 전의 TV 시리즈 '스타 드레이크'가 제시한 빛보다 빠른 워프 항법(Warp Drive)은 지금까지는 불가능한 공상으로 여겼다.
그러나 내셔널 지오그래픽 최근호는 광속을 뛰어넘는 속도가 황당무계한 것이 아니라는, 다시 말하면 실현 가능성이 있는 아이디어로 평가받기 시작했다고 보도한다. 1994년 이 항법을 과학적으로 검증한 첫 논문이 발표된 데 이어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과의 모순을 해소하는 데 필요한 특수 에너지가 필요하다는 데까지 이르렀다는 것. 미항공우주국(NASA)이 후속 모델 연구에 동참한 사실도 큰 진전이라고 이 잡지는 밝혔다.
또' 우주의 시작과 종말을 연구하는 미국의 캐서린 맥 교수도 그녀의 대표작인 '모든 것의 종말'에서 SF TV 시리즈를 자주 인용한다. 드라마는 우주론의 핵심 이론 가운데 한두 가지를 제외함으로써 스토리 전개를 부드럽게 하는 재주가 있다고 감탄하기도 한다.
이처럼 전통적인 학자도 흥미 중심의 픽션을 통해 '호기심'을 세탁한다. 이야기가 나온 김에 덧붙이자면 현재 우주론의 핵심인 이른바 암흑물질(Dark Matter)이나 진공 붕괴(Vacuum decay) 등 우주 종말론은 인간이 우주적으로는 매우 작은 존재이지만 거대한 우주를 이해하려는 지적 능력으로 존재의 의미를 높인다고 강조한다.
우주를 이해하려는 지적 능력은 기존 연구결과를 모방, 개량하는 수준이 아님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독창적이며 창조적인 발상으로 신천지를 개척하는 노력이 바로 우주를 이해하려는 지적 능력이다. 따라서 서울대학교가 이번에 마련한 '실패하는 연구'야 말로 인간의 지적 능력 수준을 높일 획기적인 프로젝트라 하겠다. 지금까지 성공률이 100% 언저리를 기록한 연구에서 벗어나는 것이야말로 한국이 '지성 개도국'에서 도약, 선진 첨단 대열에 참여하는 첫걸음인 동시에 오랜 염원인 노벨상으로 가는 문이다. 거국적 지원과 박수를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