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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랜드퀘스트 프로젝트(국가미래전략원) 시즌 1~3 결과물

Grand Quest Mak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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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SNU 그랜드퀘스트 공모전 수상작

Total 37건 1 페이지
  • 37
    우리는 왜 '충분함'에 도달하지 못하는가?
    강민수 / 사범대학 과학교육과

    생명과학은 오랫동안 욕구를 결핍의 신호로 해석해왔다. 배고픔은 에너지가 모자라다는 표시이고 갈증은 수분이 부족하다는 표시이며, 이 결핍이 채워지면 욕구신호는 꺼진다. 체온과 혈당, 삼투압도 마찬가지다. 목표값에 닿는 순간 피드백이 작동해 뭔가를 추구하는 행위가 멈춘다. 모든 생명체 안에는 '이만하면 됐다'를 아는 회로가 들어 있고, 따라서 생명은 균형으로 수렴하는 시스템으로 이해되어 왔다.  


    그런데 지위와 소비, 성취를 향한 인간의 욕구신호는 결핍이 채워져도 꺼지지 않는다. 도파민 회로는 손에 넣는 순간이 아니라 쫓는 동안 더 강해지도록 짜여 있어서, 하나를 이루면 곧 다음 목표에 도전하는 욕구신호가 켜지는 것으로 보인다. AI기반의 플랫폼 기술은 바로 그 회로를 정밀하게 이용한다. 충족 이후에도 멈추지 못하는 것은 한 사람의 의지가 약해서가 아니라, 인간에게 새겨진 설계 때문이다. 멈추는 것이 필요한 몸과, 멈춤을 모르는 욕구 사이의 비대칭이 있다. 


    충분함을 결핍의 반대말이 아니라, 그 자체의 논리를 지닌 상태로 이해할 수 있다면, 욕구가 왜 생기는지를 묻는 대신 멈춤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물을 수 있다. 그 답과 함의는 생리학만으로는 찾을 수 없다. 경제와 기술 설계, 사회의 성과 기준까지 함께 다뤄야 할 문제가 된다. 그 해답을 알면 과학기술의 발전방향과 조직 및 사회의 설계방식이 달라질 것이다. 

  • 36
    노화를 공간생화학적 네트워크의 붕괴로 설명할 수 있을까?
    강윤표 / 약학대학 약학과

    노화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생명체의 기능이 점진적으로 소실되는 과정으로 이해되어 왔다. 2013년 Cell에 발표된 노화의 특징적 징후는 이를 유전체 불안정성, 텔로미어 소실, 단백질 항상성 붕괴, 세포 노화 등으로 체계화했고, 이후 연구는 각 특징적 표지를 개별 표적으로 삼아 조절하는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그러나 기존 접근은 시간에 따른 개별 구성요소의 기능 소실을 노화의 핵심 변수로 전제한 채, 생체 분자들 사이의 관계를 유지하는 분자생물학적 네트워크가 어떻게 형성되고 붕괴하는지를 시스템 수준에서 충분히 묻지 않았다. 


    생체 분자들의 상호작용을 통합적으로 파악하고, 노화의 정의와 측정 기준을 시간 중심에서 네트워크의 안정성과 회복력 중심으로 전환한다면, 단일세포부터 개체 수준까지 아우르는 통합 진단 프레임워크가 가능해진다. 개입의 목표 역시 개별 기능의 복구에서 네트워크 전체의 회복으로 이동한다. 나아가 공간 네트워크 조절제와 같은 새로운 약물 클래스의 개발, 그리고 알츠하이머병·당뇨병·심혈관질환을 아우르는 통합적 예방·치료 전략을 여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 35
    동물은 빛을 먹고 살 수 없는가, 아니면 아직 그 방법을 모를 뿐인가?
    강진호 / 국제농업기술대학원

    인간을 비롯한 동물은 바깥에서 유기물을 먹어야 산다. 빛을 직접 에너지로 바꾸는 일은 엽록체를 가진 식물의 몫이고, 광합성 기관도 분자 장치도 없는 동물에게 빛을 먹고 산다는 말은 성립하지 않는다고 여겨져 왔다. 그것은 오랜 생물학적 상식이었다.


    그런데 그 경계는 생각보다 뚜렷하지 않다. 산호와 일부 해양 생물은 광합성을 하는 미생물과 한 몸으로 공생하며 에너지의 일부를 빛에서 얻는다. 이미 동물과 식물 사이에 걸친 존재들이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질문을 바꿔야 할지 모른다. 완전히 불가능한가가 아니라, 어디까지 가능한가로. 피부 아래 공생하는 광합성 미생물이나 세포 안의 인공 광반응 장치가 있다면, 동물도 아주 적게나마 스스로 에너지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완전한 광합성이 아니어도 하루 에너지의 일부, 극한에서 며칠을 더 버티게 할 만큼이라도 빛에서 얻을 수 있다면, 생명을 이해하는 틀이 넓어질 수 있다. 사료에 종속된 축산, 보급이 끊기는 우주와 극지에서 생존 전략도 달라진다. 동물과 식물을 가르던 분류를 고정된 벽이 아니라 바꿔 끼울 수 있는 기능의 조합으로 해석할 수 있다. 먹지 않아도 되는 생명을 만드는 문제가 아니라, 먹는 일에 덜 기대는 생명이 가능한지를 묻고자 한다. 


  • 34
    식물의 살아 있는 신호 네트워크를 정보 인프라로 삼을 수 있는가?
    권순영 / 자연과학대학 화학부

    인류의 정보 기술은 한 가지 전제 위에 서 있다. 정보는 전자 신호로 흐르고, 중앙의 처리 장치가 그것을 해석한다. 반도체 위 전자가 데이터를 나르고, 서버가 길을 정하고, 프로세서가 판단한다. 뇌를 모방하는 뉴로모픽 칩도, 신경을 읽는 뇌-컴퓨터 인터페이스도 결국 이 틀을 공유한다. 정보는 중앙으로 모이고, 작동은 전자 회로 위에서 이뤄진다.


    그런데 식물은 뇌도 중앙 신경계도 없이 수억 년간 정보를 처리해 왔다. 초식동물이 잎 하나를 갉으면 수 분 안에 식물체 전체가 방어 태세로 바뀐다. 가뭄이 뿌리를 위협하면 멀리 떨어진 잎의 기공이 닫힌다. 칼슘 파동이 초 단위로 조직을 가로지르고, 활성산소가 세포에서 세포로 신호를 이어 나르며, 관다발 속 펩타이드와 호르몬이 먼 거리를 오간다. 어느 곳에도 중앙 처리 장치는 없다. 도착한 신호를 각 세포가 스스로 해석하고 반응을 정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회로 위에서 구현하려는 분산형 정보 처리를, 식물은 중앙 장치 없이 이미 살아서 수행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작물이 스스로 물 부족과 병해를 알리고, 숲이 토양과 기후의 변화를 먼저 감지하는 노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정보를 꼭 전자 회로 위에서만 다뤄야 하는지, 스스로 자라고 연결되는 생명 자체를 정보의 바탕으로 삼을 수 있는지에 해답을 찾아야 한다. 


  • 33
    면역과 인지는 같은 뿌리에서 자라난 통합된 기억 시스템인가?
    김도윤 / 약학대학 약학과

    현대 과학은 오랫동안 면역계와 신경계를 전혀 다른 시스템으로 갈라 보았다. 면역계는 바깥에서 들어온 병원체를 가려 없애는 방어 장치이고, 신경계는 감각을 받아들이고 경험을 저장하는 고등한 정신의 영역이라고 여겼다. 그래서 기억이라는 같은 이름의 현상도 두 영역에 따로 나뉘어 있었다.


    그런데 두 메커니즘은 상위 수준에서 닮은 데가 많다. 자극을 받아들이고, 중요한 것만 골라 새겨 두고, 다시 마주치면 빠르게 반응한다. 위험한 상황이 시냅스에 각인되는 일과 병원체 경험이 면역세포에 남는 일은 그 원리가 다르지 않다. 더구나 뇌 속 면역세포인 미세아교세포는 시냅스를 솎아 내며 기억이 만들어지는 데 직접 간여한다. 기억의 주인이 신경계만은 아닐지 모른다. 그렇다면 기억은 뇌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온몸의 면역계에 동시에 새겨지는 것은 아닐까.


    기억을 단순한 저장이 아니라 살아남기 위한 적응의 방식으로 보면, 면역과 인지는 한 뿌리에서 갈라진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그 관점이 서면 트라우마와 알츠하이머, 면역 질환과 AI 학습이 하나의 패러다임으로 설명될 수 있다. 나아가 병을 특정 기관의 고장으로만 보지 않고, 몸이 경험을 기억하고 반응을 매만지는 방식 전체로 다루는 새로운 학문이 탄생할 수 있다.  

  • 32
    인간의 존엄과 삶의 의미는 반드시 노동을 전제로 하는가?
    김동호 / 농업생명과학대학 산업인력개발학과

    산업사회 이후 노동은 단순한 생계 수단을 넘어, 사회적 인정과 자기 정체성의 바탕으로 작동해 왔다. 사람은 무슨 일을 하느냐로 자신을 소개하고, 그 일을 통해 쓸모와 정체성을 인정받았다. 교육은 일자리 진입을 준비시키고, 사람의 가치도 얼마나 어떻게 일하는가로 매겨졌다. 일하지 않는 삶은 모자란 삶으로 여겨졌고, AI 시대의 논의조차 대개 사람을 어떻게 더 잘 일하게 할지에 머물러 있다.


    그러나 AI와 자동화가 생산의 상당 부분을 떠맡으면, 생존을 위한 노동은 더 이상 대다수 삶의 기본 형식이 아닐 수 있다. 그때 사람은 무엇에서 삶의 의미를 찾고, 무엇을 통해 타인과 이어지는가. 일자리를 지키느냐 마느냐보다 더 중요한 질문이다. 노동의 종말을 단정하려는 것이 아니라, 노동이 차지하던 자리가 비었을 때 인간다움과 존엄이 무엇을 중심으로 다시 설 수 있는지를 묻는 것이다.


    생존을 위한 노동 대신 사유와 배움, 창조와 돌봄, 놀이 같은 자기형성의 활동이 삶의 한가운데 설 수 있다면, 사람의 존엄은 일자리가 아니라 그가 무엇을 가꾸고 누구를 돌보는가에서 나올 수 있다. 그렇게 되면 학교는 직업 준비를 넘어 그런 능력을 기르는 곳이 되어야 하고, 사회는 일하지 않는 사람도 온전한 시민으로 설 자리를 마련해야 한다. 일자리를 어떻게 지킬지의 문제가 아니다. 인간의 존엄이 끝내 노동에 매여 있는지, 아니면 다른 무엇 위에 다시 설 수 있는지를 묻는 일이다.

  • 31
    '원인은 결과에 선행한다'는 전제 없이도 엄밀한 과학적 설명은 가능한가?
    김세훈 / 공과대학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과학적 설명은 원인이 먼저 있고 결과가 뒤따른다는 선형적인 인과론 위에 서있다. 이 전제는 가설 수립과 실험 설계의 기본 문법이자, 원인을 찾아 제거하면 문제가 해결된다는 환원주의적 세계관의 토대로 작동해 왔다. 자연과학뿐 아니라 사회과학과 정책 영역에서도 근본 원인을 규명하는 것이 곧 학문적 엄밀함의 기준으로 간주되어 왔다. 


    그러나 원인과 결과가 서로 맞물려 있는 현상 앞에서는 이 전제가 흔들린다. 생명은 환경을 바꾸며 그 환경에 다시 적응하고, 제도는 사람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지만, 동시에 사람의 행동에 의해 바뀐다. AI는 자기 출력이 다시 학습 데이터가 되어 다음 학습과 출력생성의 조건이 된다. 의식과 기후, 빈곤 같은 문제도 원인과 결과가 서로를 동시에 키운다. 무엇이 먼저인지 가리기 어려운 이런 고리를 앞뒤의 시간적 인과로만 따져서 설명하면, 정작 중요한 구조가 보이지 않는다. 


    원인과 결과를 시간 순서로 줄 세우지 않고도 현상을 엄밀하게 설명할 길이 있다면, 흩어져 있던 학문들이 같은 프레임에서 연결될 수 있다. 순환하는 인과, 동시에 맞물리는 제약을 다루는 설명 체계가 만들어진다면 복잡계 과학과 합성생물학, 인지과학과 사회 연구가 방법론적으로 같은 지평에서 초학제적으로 만날 수 있다. 

  • 30
    몸으로 세계를 겪으며 자란 인공지능은 인간과 구별되지 않는 개성을 가질 수 있는가?
    김승일 / 기초과학연구원

    인간의 성격과 지능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두고, 타고난 유전과 생물학적 조건을 앞세우는 쪽과 살아온 경험과 환경을 앞세우는 쪽이 오래 맞서 왔다. 개성은 둘이 함께 빚은 결과라고들 하지만, 어디까지가 타고난 것이고 어디서부터가 경험의 몫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무엇보다 감정과 판단, 남과 관계 맺는 방식 같은 인간다움의 핵심이 타고나는 것인지, 아니면 오랜 성장과 경험 속에서 길러지는 것인지가 아직 분명하지 않다.


    오늘의 인공지능은 언어를 익혀 맥락에 따라 다르게 반응하는 데까지 왔지만, 대개 몸이 없다. 세계를 직접 부딪치며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다. 그렇다면 인공지능에게 물리적 몸을 주면 어떻게 될까. 환경을 감각하고, 제 행동의 결과를 겪고, 다른 존재와 관계를 맺으며 오랜 세월 저마다 다른 경험을 쌓아 간다면, 그 인공지능에게도 고유한 성격이 자리 잡는다. 그렇게 자란 인공지능의 개성을 우리는 사람의 것과 구별할 수 있을까. 구별할 수 없다면, 인간의 개성은 몸과 유전자보다 살아온 경험에서 온다는 뜻이 된다.


    이 물음에 답하려면 개성이 생물학적 조건과 경험 가운데 어디에서 생겨나는지를 새로 들여다보아야 한다. 자아와 의식, 공감과 책임, 사회적 관계 같은 개념이 도대체 어떤 조건에서 성립하는지도 함께 묻게 되고, 인간과 인공지능을 가르던 경계의 기준마저 흔들릴 수 있다. 더 똑똑한 기계를 만드는 문제가 아니다. 마음과 개성이 무엇에서 생겨나는지를 묻는 일이다.

  • 29
    인간이 닿지 못하는 곳에서도 문명은 이어질 수 있는가?
    김용승 / 치과대학 치의과학과

    문명은 인간의 몸이 닿는 범위 안에서만 이어져 왔다. 사람이 숨 쉬고 먹고 잠들 수 있는 환경에서 도시를 세우고, 그 바깥은 잠시 다녀오는 곳일 뿐 머무는 곳이 아니었다. 문명의 존속은 늘 인간이 살아남을 수 있는 조건과 한 묶음이었고, 사람이 사라진 자리에서 문명이 이어진다는 그림은 그려진 적이 없다.


    그런데 인공지능과 로봇은 이미 사람이 버틸 수 없는 환경에서 감지하고 판단하고 일한다. 깊은 우주와 심해, 사람이 오래 머물 수 없는 극한의 현장, 수십 년이 걸려 사람의 생애를 넘기는 작업에서는 비유기적 존재가 더 알맞은 일꾼이 된다. 더 나아가 통신이 끊겨 누구의 지시도 닿지 않는 곳에서, 기계들끼리 스스로 고치고 짓고 이어 갈 수 있다면 어떨까. 그곳에서는 문명을 인간의 몸과 현장의 통제에 묶어 두는 일이 오히려 한계가 된다.


    사람이 없는 환경에서도 스스로 굴러가는 문명을 상상하는 일은, 인간을 기계로 대체하자는 말과 다르다. 기억과 규칙, 협력과 판단을 갖춘 사회적 시스템이 인간의 생물학적 한계 너머에서도 작동할 수 있는가가 질문의 핵심이다. 그 답을 쫓다 보면 무엇을 문명이라 부를 수 있는지, 그 문명을 누가 이어받아 지켜 갈 수 있는지를 함께 고민할 수 밖에 없다. 문명의 주체와 계승자는 인간으로만 한정되어야 하는가. 아니면 인간이 만든 비유기적 행위자 역시 인간이 닿지 못하는 시간과 공간에서 문명을 이어갈 수 있는가. 

  • 28
    식물의 생육 시간을 설계할 수 있는가?
    김정선 / 농업생명과학연구원

    농업과 원예학은 작물이 대체로 정해진 기간에 걸쳐 자란다는 전제 위에 서 있다. 잎채소는 한 달 남짓, 열매채소는 몇 달이 걸린다는 식이다. 재배 현장과 연구 역시 그 시간을 자연이 부여한 조건으로 받아들인 채 이루어져 왔다. 빛과 온도, 환기와 양분을 정밀하게 맞춰 생산량과 품질을 끌어올렸지만, 왜 꼭 그만큼의 생육 시간이 걸려야 하는지는 좀처럼 묻지 않았다.


    이 분야의 연구는 30~40일 걸리던 잎채소를 28일로 당기는 것처럼 대개 그 생육 기간을 며칠 줄이는 데 머문다. 그러나 그 시간이 자연이 정한 상수가 아니라 조절 가능한 변수라면 질문은 달라진다. 수주가 걸리던 과정을 수일이나 수시간으로 재구성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을 가능하게 하려면, 발아와 세포분열, 분화, 생체시계가 어떤 시간 질서 속에 짜여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 


    그러면 농업은 더 빨리 기르는 기술을 넘어, 생명이 시간이라는 자원을 어떻게 쓰는지를 다루는 일이 된다. 계절과 재배 기간에 종속된 생산에서, 생물학적 시간의 구조 자체를 설계하는 생명 시간의 공학으로 넓어진다. 햇빛도 계절도 없는 우주 거주지에서 식량을 길러야 하는 경우에는 더 절실해진다. 따라서 이제는 단순히 더 빨리 재배하는 법을 넘어, 생명의 시간표가 주어진 것인지, 아니면 인공적으로 조절할 수 있는 것인지를 물어야 한다. 

  • 27
    무결한 논리를 넘어 망각, 오류, 신념을 갖춘 개별적 인공지능이 가능한가?
    김진우 / 의과대학 의과학과

    오늘의 AI는 오류를 줄이고, 완전한 정보 처리와 최적의 정답을 향해 발전해 왔다. 무결함이 곧 지능의 척도이고, 학습은 주어진 정답을 충실히 복제하는 일로 여겨진다. 같은 데이터를 넣으면 누가 묻든 같은 답이 나오는 것이 잘 만든 시스템의 증거였다.


    그러나 인간의 지성은 완전한 논리와 정확한 기억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아인슈타인은 뉴턴의 고전역학에 보란 듯이 반문했고, 사고실험에 집중하려 군더더기를 덜어 냈으며, 빛보다 빠른 것은 없다는 도전적인 가설을 끝까지 밀어붙였다. 기존 질서를 벗어난 오류, 불필요를 지우는 망각, 입증되지 않은 신념 등 아인슈타인의 개별적 특성 덕분에 상대성 이론이 태어날 수 있었다. 완전성이 아니라 개별성이 인간 지성이 발전할 수 있는 토대였다. 반대로 완벽하고 동일한 정답을 건네는 인공지능에 기대면서 인간의 글쓰기와 사고 능력이 점차 무너지고 있다는 우려가 있기도 하다. 


    같은 데이터에서 늘 같은 답을 내는 AI가 아니라, 저마다 다른 관점과 판단의 길을 내는 AI가 가능하다면, 지능은 정보를 복제하는 능력을 넘어 새로운 의미를 가지게 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망각과 오류와 신념이 지능의 결함인지, 아니면 지능의 진정한 본질인지를 알아야 한다. 

  • 26
    생명의 최소 단위로서, 자가 복제가 가능한 독립형 인공 미토콘드리아를 설계할 수 있는가?
    김태일 / 농업생명과학대학 농림생물자원학부

    미토콘드리아는 흔히 세포에 종속된 발전소로 정의된다. 약 20억 년 전 내공생을 통해 독립성을 잃고 세포의 부속품으로 편입되었다는 것이 지배적인 학설이다. 이런 관점에서 미토콘드리아 연구는 세포핵의 통제 아래 일어나는 에너지 대사와 질병 기전에 집중되어 왔고, 미토콘드리아가 독립적 단위로 기능할 가능성은 주목받지 못했다. 그러나 미토콘드리아는 스스로 유전 정보를 복제하고 단백질을 합성하는 최소한의 기작을 갖추고 있을 뿐 아니라, 세포 사이의 터널을 통해 옮겨 다니며 손상된 조직을 복구하는 등 예상보다 훨씬 능동적인 구조물이다.


    그렇다면 미토콘드리아를 세포에서 떼어 내 인공 구조체 안에서 홀로 살아가게 할 수 있을까. 독립적인 생존과 복제가 가능하다면, 그것이 여전히 세포소기관인지 아니면 새로운 형태의 생명체인지 되묻게 된다. 세포의 통제를 벗어나 스스로 복제하고 대사하는 인공 미토콘드리아를 만들 수 있다면, 생명의 최소 단위가 어디까지 내려가는지, 새로운 생명을 빚는 일의 한계가 어디인지도 함께 드러난다.


    미토콘드리아의 유전체를 역설계해 세포 밖에서도 스스로 증식하는 최소한의 대사 유전체를 만드는 일, 즉 세포 독립적 에너지 유닛을 창조하는 것이 그 출발점이 된다. 인공 미토콘드리아를 이식해 난치성 질환과 노화에 다가서는 길도, 다른 세포소기관으로 제어 기술을 넓히는 길도 이 질문에 대한 해답에서부터 열릴 수 있다.  

  • 25
    망각하지 않는 문명은 여전히 스스로를 갱신할 수 있는가?
    나진수 / 공과대학 재료공학부

    문명이 기억과 정보를 축적하며 발전해 왔다는 믿음은 상식처럼 여겨져 왔다. 더 많이 기록하고 더 오래 보존하고 더 쉽게 다시 꺼내 볼수록 사회는 나아진다고 보았다. 그 전제 속에서 기록은 늘 좋은 것이었고, 망각은 모자라거나 위험한 것이었다.


    그러나 인간의 공동체는 기억만으로 굴러가지 않았다. 용서와 화해, 공소시효와 사면, 세대교체와 명예 회복은 모두 과거가 시간이 지나면 다른 무게로 다뤄져야 한다는 약속 위에 서 있었다. 기억이 현재를 규정하는 힘을 천천히 잃는 그 시간의 완충 덕분에, 사회는 매번 다시 출발할 수 있었다. 디지털 기록이 과거를 남기는 기술이었다면, AI는 그 과거를 끊임없이 현재로 재소환하는 기술이다. 흩어졌던 말과 실수가 연결되고 요약되어 지금의 판단 근거로 되돌아온다. 완충은 사라지고, 과거는 좀처럼 현재를 놓아주지 않는다.


    물론 반복되어선 안 될 비극의 기록처럼, 결코 지워져선 안 될 기억도 있다. 그러나 모든 것이 남아 끝없이 되살아난다면, 실수와 낙인, 상처마저 함께 영원해진다. 그때 법은 사라짐과 회복의 조건을 다시 생각하고, 역사학은 과거와 현재 사이에 어떤 거리와 리듬이 필요한지를 다시 물어야 한다. 무엇을 남길 것인가의 문명에서, 무엇이 사라질 수 있어야 인간과 문명이 다시 시작될 수 있는가를 묻는 문명으로 넘어가는 일이다.


  • 24
    인공지능은 학습한 것을 선택적이고 검증 가능하게 잊을 수 있는가?
    민태규 / 공과대학 산업공학과

    AI는 데이터를 학습해 수십억 개의 가중치에 분산해 녹여 담는다. 한번 녹아든 정보는 어디에 남았는지 짚어 내기 어렵고, 그래서 특정 개인의 정보만 골라 지우는 일은 원리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전제되어 왔다. 그 전제 위에서 프라이버시 보호는 학습이 끝난 뒤의 사후 규제, 곧 접근 차단과 출력 필터링, 삭제 요청으로만 다뤄져 왔다. 망각이 지능 시스템의 속성일 수 있다는 가능성은 그 바깥에 밀려나 있었다.


    그러나 인간의 뇌에서 망각은 고장이 아니라 인지 기능의 핵심이다. 뇌는 불필요한 시냅스 연결을 능동적으로 솎아 내고, 이 과정이 막히면 인지 기능에 문제가 생긴다. 나아가 초파리와 생쥐 연구는, 기억이 한번 새겨진 뒤에도 그 흔적을 능동적으로 약화시키는 생물학적 장치가 따로 있음을 보여준다. 생물학적 지능에서 망각은 기억만큼 정교하게 설계된 능동적 과정이다. 반면 오늘의 AI는 기억만 있고 망각이 없는 시스템이다.


    그렇다면 AI에 생물학적 망각에 대응하는 '설계된 망각'을 부여해, 학습한 정보를 선택적이고 검증 가능하게 지워 낼 수 있을까. 그것이 가능하다면 프라이버시는 사후 규제가 아니라 모델 구조에 내장된 속성으로 재정의되고, 잊혀질 권리는 법으로 단속할 약속이 아니라 기술로 보장하고 수학적으로 검증할 대상이 된다. 학습된 데이터를 기술로 제거하던 기존 접근과 질적으로 다른, 망각이 지능의 설계 원리여야 하는가를 묻는 물음이다. 컴퓨터과학과 인지과학, 법학과 윤리학이 함께 풀어야 한다.

  • 23
    잠은 줄일 수 없는 자연의 섭리인가, 조절할 수 있는 과정인가?
    박시현 / 교육종합연구원

    인간은 한평생의 삼분의 일을 잠으로 보낸다. 자는 동안 특정 뇌파와 뇌척수액의 흐름이 뇌의 노폐물을 씻어 내고 기억을 정리하는데, 이 청소를 맡는 글림프 시스템은 주로 잠든 사이에만 작동한다. 그래서 절대적인 수면 시간을 채우지 못하면 인지 기능이 떨어지고 병이 따른다. 잠은 인간이 어쩌지 못하는 자연의 섭리로 여겨졌다.  


    그런데 잠이라는 상태와 잠이 하는 일을 나눠 보면 어떨까. 노폐물 청소와 기억 통합, 신경망 정비가 정확히 어떤 조건에서 일어나는지 알 수 있다면, 그 일을 잠 바깥에서도 수행할 수 있을지 모른다. AI로 뇌의 피로와 대사 상태를 실시간으로 읽고, 비침습적 신경 자극으로 회복 경로가 돌아가게 한다면, 잠은 고정된 시간이 아니라 조절할 수 있는 생체 과정으로 바뀐다. 여덟 시간의 회복을 한 시간으로 압축하거나, 깨어 있는 채로 그 회복회로의 일부를 가동하는 방식이 있을 수 있지 않을까.


    핵심은 잠을 통한 회복이 언제 어떻게 일어나는지를 밝혀, 불면과 교대 근무, 치매와 신경 퇴행을 다른 차원에서 다를 수 있는 길을 여는데 있다. 초압축 수면이나 각성 중 회복은 먼 상상이지만, 이 질문을 따라가다 보면 궁극적으로 뇌가 스스로를 정비하는 원리가 드러날 것이다. 잠이 하는 일을 사람이 조절할 수 있다면, 인간이 시간을 쓰는 방식 자체가 달라질 것이다.

  • 22
    진화의 방향을 미리 내다볼 수 있는가?
    석승혁 / 의과대학 미생물학교실

    진화생물학은 생물이 환경과 선택압 속에서 어떻게 변해 왔는지를 잘 설명해 왔다. 그러나 그것은 대개 지나간 결과를 되짚는 일이었다. 진화는 본래 우연하고 역사적인 과정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그 방향을 미리 내다보거나 예측 가능한 동역학으로 다루려는 시도는 드물었다.


    고래의 진화를 보면 생각이 달라진다. 약 천만 년이라는 짧은 시간에 육상 포유류가 완전한 수생 동물로 바뀌었고, 같은 조상에서 갈라진 계통이 한쪽은 지구 역사상 가장 큰 몸집으로, 다른 쪽은 작은 체형으로 전혀 다른 길을 갔다. 진화가 단일한 방향으로 귀결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제약과 선택압이 결합된 다차원 공간에서 서로 다른 안정 상태로 수렴하는 과정으로 보이는 것이다.


    그렇다면 유전체와 생리, 생태적 제약을 통합한 다차원 자유에너지 지형(landscape)을 재구성하여 진화의 방향을 예측할 수 있지 않을까? 진화를 이 지형 위에서의 이동과정으로 이해한다면, 진화생물학은 과거를 설명하는 학문에서 미래를 부분적으로 내다보는 과학으로 확장된다. 여러 계통에서 거듭 나타나는 거대화와 소형화, 생태 특화를 하나의 프레임으로 설명하고, 기후변화의 압력이 거세질 때 생물이 어디로 향할지도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 21
    인간의 뇌가 먼저 배우고, AI가 그 결과를 이어받을 수 있는가?
    양예찬 / 공과대학 협동과정 바이오엔지니어링전공

    오늘의 AI는 방대한 데이터와 반복 학습을 통해 높은 성능에 이른다. 그러나 환경이 바뀔 때마다 다시 조정해야 하고, 데이터 분포가 계속 변하는 현실에서는 새것을 배우는 과정에서 능력을 잃는 문제까지 겪는다. 반면 사람의 뇌는 적은 경험만으로도 변화를 빠르게 알아차리고, 기존 기능을 크게 무너뜨리지 않으면서 새로운 행동을 익힌다.


    최근 연구는 소량의 뇌 신호를 활용해 AI가 인간의 뇌 반응과 더 유사한 표현을 학습하도록 유도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는 모델을 무작정 키우는 대신, 인간 뇌가 정보를 처리하는 방식에서 얻은 단서를 AI 학습에 들여오려는 시도다. 그렇다면 학습의 출발점을 바꿔 볼 수 있지 않을까? AI가 새 환경마다 대규모 데이터로 다시 조정되는 대신, 빠르게 적응하는 생물학적 지능이 변화의 핵심을 먼저 파악하고, AI가 그 과정에서 얻어진 신호와 판단 패턴을 이어받아 널리 쓰일 모델로 다듬는 것이다. 즉, 인간 뇌의 적응 능력을 AI학습의 출발점으로 삼는 접근이다.


    그렇게 되면 AI는 인간의 경험과 판단에서 얻은 단서를 바탕으로 새로운 상황에 더 빠르게 적응할 수 있다. 적은 데이터와 계산만으로도 낯선 환경,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 사용자마다 조건이 달라지는 현실 문제에 대응하는 AI의 가능성이 열린다. 이런 기술이 발전하면 기계는 더 이상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인간과 학습을 주고받으며 함께 적응하는 존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 20
    생태계 보전은 과거를 지키는 일인가, 변화하는 생명에 발맞추는 일인가?
    유현 / 농업생명과학대학 농생명공학부

    생태계 보전은 오래도록 과거의 어느 특정 시점의 상태를 정상으로 정해 두고, 그 상태를 지키거나 되돌리는 일이었다. 생명은 지킬 고유종과 없앨 외래종으로 나뉘었고, 그 가치는 인간에게 쓸모가 있느냐로 갈렸다. 자연을 멈춰 세운 한 장면이 곧 옳음의 기준이었다.


    그런데 작은 생물들을 매일 들여다보며 그 미세한 차이를 기록하다 보면, 생명은 한순간도 멈춰 있지 않다. 기후가 흔들리자 생물들은 살길을 찾아 서식지를 옮기고 필사적으로 적응한다. 그 적응에 성공해 새 땅으로 옮겨 온 생물은 인간세상에서 교란종이라 불리며 박멸의 대상이 되고, 적응하지 못해 사라져 가는 생물은 멸종위기종이라 불리며 큰 비용을 들여 보존한다. 같은 적응인데 인간의 논리로 한쪽은 죽이고 한쪽은 살린다. 진화의 성공이 보전의 눈에는 파괴로 비치는 모순이다.


    지킬 것을 과거의 모습이 아니라 변화 그 자체로 옮겨 본다면, 보전의 개념은 달라져야 한다. 무엇을 없애고 무엇을 남길지의 목록이 아니라, 옮겨 온 생물과 본래 살던 생물이 새로 맺는 관계를 어떻게 함께 살아가게 도울지의 문제가 된다. 자연을 한 시점에 가둘 수 있다는 믿음을 내려놓는 일이기도 하다. 우리가 지키려는 것이 과거의 풍경인가, 아니면 흐르는 생명 그 자체인가.

  • 19
    생명의 규칙은 살아남은 형태에 있는가, 진화가 비워 둔 곳에 있는가?
    이다인 / 자연과학대학 생명과학부

    생명과학은 발현된 유전자, 살아남은 종, 구조가 밝혀진 단백질처럼 보이는 것을 읽어 왔다. 진화에 성공한 결과물을 해독하는 그 방향에서 생명과학은 눈부시게 나아갔다. 그러나 자연에 실제로 나타난 생명의 형태는 가능했던 조합 가운데 극히 일부다. 진화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나머지 방대한 영역은 비어 있고, 우리는 그 빈 쪽을 좀처럼 들여다보지 않았다.


    미켈란젤로가 조각은 피에타의 실루엣은 무언가를 더해서가 아니라 덜어 내어 완성됐다. 조각가가 깎아 없앤 돌이 역설적으로 우리가 보는 형상을 빚는다. 생명도 그렇지 않을까. 단백질의 접힘에도, 생체 네트워크에도, 논리적으로는 가능하지만 자연계에는 끝내 나타나지 않는 미지의 구역이 있다. 그 빈 곳은 우연히 비어 있는 것이 아니라, 생명체가 스스로 무너지지 않으려고 쳐둔 경계너머의 지형일 수 있다.


    그렇게 보면 질병은 부품 하나가 고장 난 일이 아니라, 안전하게 머물 수 있는 경계를 넘어선 일로 해석할 수 있다. 진화가 피해간 영역의 지도가 그려지면, 합성생물학도 무엇을 더 만들 수 있는지가 아니라 무엇을 건드리면 안 되는지의 안전선을 먼저 고려하게 될 것이다. 생명의 규칙을 살아남은 형태에서만이 아니라 진화가 끝내 허락하지 않은 빈 곳에서도 읽어 낼 수 있다면, 더 많이 조작하기에 앞서 넘지 말아야 할 경계부터 그릴 수 있다.

  • 18
    생물학적 노화는 실재하는가?
    이서영 / 공과대학 재료공학부

    노화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진적으로 축적되는 보편적인 생물학적 과정으로 이해되어 왔다. 이 전제 위에서 노화를 12가지 표지로 체계화하고, 노화 시계를 통해 개인의 생물학적 나이를 수치화하려는 시도가 이어진다. 그러나 이 관점은 노화라는 개념이 실제로 하나의 실체를 가리키는지, 아니면 건강 상태를 대리하는 추상적 구성물에 가까운지에는 답하지 못한다. 인간의 분자적 변화는 시간에 따라 고르게 쌓이기보다 특정 시점에서 크게 재편되기도 하고, 장기마다 노화 속도가 달라 질병과 사망 위험을 다르게 예측한다는 보고도 있다.


    그렇다면 노화의 서로 다른 징표들은 과연 하나의 공통된 생물학적 시간축과 본질을 공유하는 것일까? 우리가 노화라고 부르는 것은 단일한 과정이라기보다, 서로 다른 수준에서 발생하는 변화들을 하나의 이름 아래 묶어 온 해석의 틀일 뿐인 것은 아닌가?


    생물학적 노화는 실재하는가라는 질문은 서로 다른 장기와 세포, 개인에게서 나타나는 변화들 가운데 무엇이 노화의 공통 원리이고 무엇이 질병·환경·생활 조건에 따라 달라지는 현상인지를 다시 가려내도록 요구한다. 노화가 단일한 과정이 아니라면, 앞으로의 연구는 보편적 시계를 찾는 데 머물 수 없다. 어떤 변화들이 실제로 서로 연결되어 있고, 어떤 변화들은 단지 함께 관찰되어 왔을 뿐인지를 새롭게 구분해야 한다. 결국 이 질문은 노화를 자연스럽고 보편적인 생의 흐름으로 받아들여 온 통념을 흔드는 동시에, 노화를 과학적으로 엄밀하게 재정의하고 측정·제어 가능한 연구의 토대를 마련하는 출발점이 된다.


  • 17
    인간과 인공지능이 권리와 의무를 공유하는 규칙을 만들 수 있는가?
    이수빈 / 과학데이터혁신연구소

    인공지능은 대체로 인간이 쓰는 도구이자 서비스로 여겨진다. 권리와 책임은 사람에게 있고, 기계는 아무리 똑똑해져도 누군가의 소유물이다. 그런데 일반인공지능이 생산과 의사결정, 안전과 복지의 한복판에 들어선다면, 그것을 끝까지 물건으로만 둘 수 있는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기술이 빠르게 앞서가는 사이, 그것을 가진 쪽과 갖지 못한 쪽의 격차가 지배와 종속의 구조로 굳어질 위험도 커진다. 그렇다면 AI를 법과 정치의 질서 안 어디에 놓을지 미리 물어야 한다. 예를 들어 AI에게 투표권을 줄지, 세금을 물릴지, 병역을 지울지를 따져 보면, 권리와 의무를 어디까지 나눌 수 있을지 가늠해 볼 수 있다. 권한 없이 책임만 지우거나, 책임 없이 권한만 주는 구조는 어느 쪽이든 위태롭다. 핵심은 인간과 AI가 함께 살아갈 때 권리와 의무를 누구에게 어떻게 나눌 것인가에 있다.


    AI가 경제와 행정, 생산을 실제로 떠맡는 시대가 온다면, 인간만을 전제로 짜인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틀을 손볼 수밖에 없다. AI를 소유한 개인과 기업의 권한, AI가 일으킨 피해의 책임, 인간과 기계의 정치적 관계가 모두 다시 검토 대상이 된다. 비인간 지능을 사회 질서의 바깥에 둘 것인지 안에 들일 것인지, 들인다면 권리와 책임의 경계선을 어디에 그을 것인지를 이제 물어야 한다.

  • 16
    지능은 언어 없이도 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가?
    이의정 / 공과대학 기술경영∙경제∙정책전공

    인간은 오랫동안 언어로 생각하고, 언어로 지식을 저장하고 나눠 왔다. '내 언어의 한계가 내 세계의 한계'라는 말처럼, 사고는 언어의 틀 안에서 이루어진다고 여겨졌다. 거대 언어 모델의 성공은 그 믿음을 한층 굳혔다.


    그런데 알파고는 사람의 말로는 쉽게 풀어낼 수 없는 수를 두었고, 알파폴드는 언어적 설명 없이 데이터의 기하학적 관계만으로 단백질 구조를 풀어냈다. 언어는 세계를 다루는 강력한 도구이지만, 복잡한 것을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압축하면서 많은 정보를 잃을 수밖에 없다. 이제 기계가 인간의 말을 거치지 않고 데이터의 고차원 패턴을 곧장 이해하기 시작하면서, 언어 너머의 지능이 무엇일까에 대한 질문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복잡한 물리 현상과 생명 구조, 사회 시스템처럼 말로 온전히 옮기기 어려운 대상은, 오히려 언어 이전의 표현 속에서 더 잘 다뤄질 수 있다. 그렇다면 언어를 뛰어넘는 추론 기계가 가능해지고, 다차원 벡터나 기하학적 구조로 지식을 교환하는 새로운 비언어적 소통 방식이 탄생하게 될 것이다. 과연 언어를 통하지 않고도 세상을 이해하는 것이 가능할까?

  • 15
    인공지능이 답뿐 아니라 물어볼 가치가 있는 질문까지 던질 수 있는가?
    이준만 / 경영전문대학원박현우 / 데이터사이언스대학원최재원 / 사회과학대학 경제학부

    위대한 발견은 늘 위대한 질문에서 시작됐다. 다윈은 종의 다양함을 보며 진화의 원리를 물었고, 아인슈타인은 빛을 타고 달리면 무엇이 보일지를 물었다. 그동안 무엇을 물을지 정하는 일은 사람의 몫이었고, AI는 주어진 문제를 풀고 데이터에서 패턴을 찾는 도구로 여겨졌다. 질문을 던지는 일만은 인간의 특권으로 남아 있었다.


    그런데 알파폴드는 인간 연구자가 가설로 제시한 적 없는 단백질 접힘패턴을 독자적으로 발견했다고 보고했고, 이 패턴은 이후 실험에서 실재가 확인되었다. 수학에서도 AI가 누구도 살피지 않은 추측을 제안하고 증명해낸 사례가 나오기 시작했다. 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던지지 않은 질문을 기계가 제시한 것이다. 이것이 우연한 행운인지, 아니면 AI가 연구 질문을 체계적으로 생성할 수 있다는 증거인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만약 AI가 매일 수천 개의 물음을 쏟아 낸다면, 인간 연구자는 가설을 검증하는 사람에서, AI가 내놓은 질문의 가치를 판단하는 사람으로 바뀐다. 그런데 인간이 아니라 AI가 좋은 질문이란 무엇인가를 판단하는 기준 또한 제시할 수 있는가. 그때 인간의 역할은 무엇인가. 끝없이 반복되는 이 재귀적 질문에 답을 찾아야 한다. 

  • 14
    생명의 정보를 단백질에서 핵산으로 흐르게 할 수 있는가?
    이준석 / 첨단융합학부

    생명과학의 중심원리는 정보가 DNA에서 RNA로, RNA에서 단백질로 흐른다는 데 있다. 1958년 크릭이 세운 이 도그마 위에서 오믹스 연구가 쌓여 왔다. DNA나 RNA같은 핵산은 PCR로 단 한 분자에서도 무한히 증폭해 읽어낼 수 있지만, 단백질을 복사해 증폭시키는 기술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단백질 분석은 질량분석기의 성능에 전적으로 의존해왔다. 


    검출의 민감도에 있어 그 격차는 뚜렷하다. 단일 세포의 mRNA는 이제 수 개의 분자까지 감지할 수 있지만, 같은 세포의 단백질은 양이 많은 일부만이 포착된다. 역전사효소나 프리온처럼 이러한 중심원리를 거스르는 예가 자연에 존재한다. 그러나 유독 단백질의 서열을 핵산 서열로 되돌리는 경로만은 자연 어디에도 없다. 


    자연이 비워 둔 그 한 칸을 인공효소나 기계로 채울 수 있지 않을까. 단백질 서열을 핵산 정보로 되돌려 쓰는 ‘역번역'이 가능하다면, 단백질도 PCR처럼 극미량에서 증폭해 분석할 수 있다. 단일 세포의 단백질 지도 작성, 희귀 바이오마커 진단, 조직 내 미량 단백질 분석이 현재의 한계 너머로 나아갈 수 있다. 이는 분석 기술 하나를 더하는 일이 아니라 한 방향으로만 흐르던 생명의 정보에 인간이 처음으로 역방향 화살표를 그려 넣고, 정보의 흐름 자체를 설계할 수 있는 지를 묻는 일이다.

  • 13
    인공지능이 스스로 만든 잠재공간을 인간의 과학 개념으로 옮겨 읽을 수 있는가?
    이준환 / 자연과학대학 화학부

    과학적으로 데이터를 읽어낼 때, 측정과 해석의 기준이 되는 좌표계는 인간이 세웠다. 온도와 질량, 종과 원소처럼 인간이 만든 개념의 틀 위에서 세계를 분류하고 법칙을 세웠다. 이 사고방식 위에서 과학은 멀리 나아갔다.


    그런데 화학에서 AI는 사람이 일러 주지 않은 내부 표현을 스스로 만들어 물성을 예측해 내고 있다. AI는 제 나름의 잠재공간, 즉, 세계를 정리하는 내부 좌표계를 세우고 그것을 바탕으로 높은 성능을 낸다. 그러나 그 좌표계가 인간의 것과 얼마나 겹치고 다른지는 체계적으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만약 인공지능이 쓰는 잠재공간의  좌표계를 사람이 그대로 읽어 낼 수 있다면, AI는 답을 내는 기계를 넘어 새로운 개념을 상상하는 동반자가 될 것이다. 


    그 번역이 가능해지면, 우리가 써 온 과학의 범주가 충분한지 되짚게 된다. 어떤 개념은 그대로 유효하고, 어떤 것은 더 압축적인 새 개념으로 바뀌며, 서로 다른 분야의 현상이 전혀 예상치 못한 구조 아래 묶일 수도 있다. AI가 그린 다른 좌표를 인간 과학의 언어로 이해할 수 있다면, 과학의 새로운 경계를 열 수 있을 것이다.  

  • 12
    여러 인공지능 모델이 경쟁하면서 스스로 진화할 수 있는가?
    이지성 / 공과대학 컴퓨터공학부

    지금까지 인공지능은 주어진 데이터에 맞춰 오차를 줄여 가는 최적화로 학습해 왔다. 성능을 끌어올리는 길은 곧 더 크고 정교한 모델을 빚는 일이었고, 모델이 커질수록 더 똑똑해진다고 믿었다. 학습이란 여러 대안을 두고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우월한 정답을 향해 수렴해 가는 과정이라는 생각은 좀처럼 흔들리지 않았다.


    그런데 『이기적 유전자』가 그리는 생태계에서는 사정이 다르다. 한 환경 안에서 서로 다른 생존 전략이 동시에 경쟁하고 공존하며, 때로는 정교한 전략보다 단순한 쪽이 더 오래 살아남기도 한다. 인공지능 생태계에서 데이터셋을 하나의 생태계로, 모델을 그 안에서 살아가는 개체로 본다면 어떨까. 학습은 단 하나의 최적해를 찾아가는 일이 아니라, 저마다 다른 단순한 전략들이 경쟁하고 갈라지며 지배적 위치를 찾아 가는 진화적 과정으로 다시 그려질 수 있다.


    이 그림이 맞다면, 지능은 하나의 꼭짓점으로 모여드는 것이 아니라 여러 전략이 어우러진 결과로 이해된다. 작고 빠르며 속을 들여다볼 수 있는 모델들이 경쟁과 협력을 거쳐 함께 문제를 푸는 설계가 열린다. 인공지능 연구의 핵심개념도 최적화 중심의 공학에서 생태와 진화, 적응의 개념으로 넓어진다. 더 크고 정교한 모델 하나를 만들어내기 위해 노력하기에 앞서 지능이 본래 하나의 정답으로 다가가는 일인지, 여럿이 경쟁하면서 진화하는 것인지를 물어야 한다. 

  • 11
    기후변화는 줄여야 할 위기인가, 끌어 쓸 수 있는 조건인가?
    이창하 / 공과대학 화학생물공학부

    기후변화는 오래도록 줄이고, 늦추고, 적응해야 할 위기였다. 온실가스를 덜 내보내고, 오르는 기온과 잦아지는 극한 기상에 대비하는 것이 대응의 전부였다. 줄이거나 피하거나 버티거나, 셋 중 하나였다. 변화한 기후를 도리어 끌어 쓰자는 공학적 발상을 하나의 기술이 아니라 패러다임으로 만들 수 있을까?.


    변화한 기후는 단순히 더워진 상태가 아니다. 대기와 해양의 순환이 재편되고, 지역과 고도 사이의 온도와 압력, 습도 차가 더 벌어지며, 탄소 농도와 염도, 수자원의 분포가 새로 짜인다. 공학적으로 일을 만들어 내는 힘은 바로 이런 차이, 곧 구배에서 나온다. 그 차이가 커졌다는 것은, 교란이 심해진 동시에 끌어 쓸 수 있는 구동력이 그만큼 커졌다는 뜻이기도 하다. 기후변화는 막아야 할 위기인 한편, 전에 없던 에너지와 물질의 기울기를 품은 시스템이 된다.


    그렇다면 그 커진 구배를 직접 끌어 쓰는 길도 있을 수 있지 않을까. 벌어진 온도 차에서 열에너지를 회수하고, 바뀐 해류와 강해진 바람에서 동력을 얻고, 늘어난 이산화탄소를 원료로 되돌리고, 재편된 염도와 수자원에서 자원을 거두는 방식이다. 기존의 감축과 적응도 의미가 있지만, 기후변화를 능동적으로 끌어 쓰는 방식으로 공학적 패러다임을 전환할 필요가 있다.   

  • 10
    인간의 정체성은 사회적 상호작용 없이도 형성될 수 있을까?
    임하진 / 사회과학대학 언론정보학과김은미 / 사회과학대학 언론정보학과

    사회과학은 오래도록 인간의 정체성을 사회적 상호작용의 산물로 여겨 왔다. 사람은 타인의 눈을 통해 자기를 인식하고, 집단에 속함으로써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게 되고, 작은 단서만으로도 내 편과 다른 편을 가르기도 한다. 거울자아에서 사회적 정체성 이론, 그리고 뇌 속 거울뉴런의 발견까지, 이 전제는 거의 모든 인간 이해의 바닥에 깔려 있다. 오늘의 양극화도 내집단 편향과 집단 정체성, 상대를 향한 적대라는 사회적 상호작용 위에서 설명된다. 인간의 거의 모든 현상에는 '사회적'이라는 말이 따라붙었고, 정체성의 형성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런데 AI 에이전트의 등장은 이 전제에 도전한다. 한 사람의 언어와 사고, 관계의 패턴을 학습한 AI 에이전트는 인간처럼 상호작용한다. 그러기에 AI와의 교류를 통해  타인의 시선과 사회적 압력을 덜어 낸 조건에서 과연 인간의 정체성이 어떻게 형성될 수 있는지를 들여다볼 수 있게 되었다. 사회적 중력이 약해진 자리에서 정체성은 어떤 모습이 되는지, 인류가 한 번도 해 보지 못한 관찰이 가능해진다. 


    정체성과 사회적 상호작용의 관계를 이해할 수 있다면, 사회과학이 가장 오래 의지해 온 대전제를 검증의 무대위에 올릴 수 있다. 사회적 상호작용 없이는 정체성이 서지 않는다고 확인된다면, 그것은 인간이 사회적 존재임을 보여주는 가장 강력한 증거가 된다. 반대로 사회적 중력 없이도 정체성이 부분적으로라도 형성된다면, 우리는 인간의 사회성을 더 정교하게 다시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어느 쪽이든 이 질문은 양극화와 갈등, 집단소속의 문제에 접근하는 프레임을 바꿀 것이다. '인간은 사회적 존재'라는 오랜 명제가 맞는지 검증해 보고 재개념화해 볼 기회가 왔다. 

  • 9
    인간은 동물, 식물, 기계를 포함한 다른 종과 대화할 수 있는가?
    장인철 / 사범대학 영어교육과정대홍 / 사범대학 화학교육과

    언어는 인간만의 능력으로 여겨져 왔다. 복잡한 문법과 상징 체계를 갖춘 인간의 말이 있어 고등 사고가 가능했고, 그 말을 공유하지 않는 다른 종은 이해의 상대가 아니라 관찰하고 이용하는 대상에 머물렀다.


    그러나 의사소통이 꼭 말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동물은 행동과 소리로, 식물은 화학 신호와 생리적 반응으로 정보를 주고받는다. 우리는 오래전부터 반려동물과 마음을 나눴고, 이제는 AI를 얹은 기기에 말과 몸짓으로 명령하는 일도 어색하지 않다. AI 번역은 서로 다른 말을 쓰는 사람을 잇고, 신호 해석 기술은 이질적인 소통 체계를 연결하기 시작했다. 개의 몸짓, 새의 울음, 식물의 화학 반응, 기계의 상태 신호에도 의사소통의 환경과 의도가 담길 수 있다. AI가 그 신호의 패턴을 읽어 사람이 알아들을 표현으로 옮기는 매개기능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대화란 인간의 말을 다른 존재에게 가르치는 일이 아니라, 그들 각자의 신호 체계를 읽어 내는 일이다. 그 소통이 명령 전달에 그치는지, 감정을 나누고 협력하는 관계로 나아갈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언어학과 뇌과학, 생물학과 AI, 윤리학이 함께 고민해야 할 질문이다.

  • 8
    노동과 소득이 갈라져도 경제순환은 지속될 수 있는가?
    장제성 / 사회과학대학 경제학부

    시장경제는 한 가지 순환 위에 서 있다. 가계가 기업에 노동을 제공하는 대가로 임금을 받고, 그 임금이 소비가 되어 다시 기업의 생산을 떠받친다. 노동에서 소득으로, 소득에서 소비로 이어지는 이 고리가 시장을 굴려 온 견고한 기반이었다. 생산성이 오르면 사회 전체의 부가 함께 커진다는 믿음 위에서 모든 정책이 짜였다.


    그런데 AI가 이 경제의 순환고리에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하고 있다. 지난날의 기술은 인간의 노동과 함께 일했지만, 이제 AI는 생산에서 인간의 노동을 대체하는 단계로 들어섰다. 여기서 역설이 생긴다. 기업은 어느 때보다 높은 생산성을 누리지만, 정작 그 물건을 사야 할 가계는 일자리를 잃어 살 힘을 잃는다. 공급은 넘쳐나는데 수요가 증발한다. 생산성이 오를수록 사회 구성원의 주머니가 도리어 비어 가는 역설이다.


    노동과 소득이 갈라진 세상에서도 돈이 돌고 시장이 지탱되려면, 부가 어떤 길로 흘러야 하는지를 새로 물어야 한다. 임금이 아닌 통로로 소득이 가계에 닿을 수 있는지, 그러려면 어떤 사회계약이 필요한지가 과제가 된다. 인류의 번영과 경제적 순환을 지속할 수 있는 새로운 가치 분배 모델과 경제 시스템이 무엇인지 고민하게 될 것이다.노동과 소득의 끈이 풀린 시대에 시장경제에서 경제는 어떻게 순환할 수 있을까?

  • 7
    인공지능은 순차적 계산을 벗어나 공간적 물리 현상만으로 추론할 수 있는가?
    정영준 / 공과대학 재료공학부

    오늘의 인공지능은 시간을 따라 한 줄씩 계산한다. 데이터는 메모리에 머물다 정해진 클럭에 맞춰 회로를 한 단계씩 통과하고, 그 누적이 곧 학습이고 추론이 된다. 우리는 이 순서를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다.


    빛은 다르게 움직인다. 푸리에 광학에서 빛은 렌즈나 메타표면을 지나는 순간, 수없이 많은 정보를 간섭과 회절, 중첩으로 공간 전체에서 한꺼번에 변환한다. 알고리즘을 한 줄씩 밟아 나가는 것이 아니라, 파동이 겹치는 그 자리에서 단숨에 답에 찾는다. 계산을 시간 위에 길게 늘어놓아야 한다는 생각은, 어쩌면 전자공학 시대가 물려준 고정관념일지도 모른다.


    그동안 우리는 AI의 한계를 더 작은 소자와 더 빠른 칩에서 찾아 왔다. 그러나 기술발전의 병목이 소자가 아니라 계산의 형식 그 자체에 있다면, 질문이 달라져야 한다. 추론이 시간 단계의 누적이 아니라 빛과 물질이 만나는 순간에 한꺼번에 일어날 수 있다면, 지금의 계산 중심 구조와 다른 방식으로 지능을 구현할 수도 있다. 그때 학습과 추론은 회로를 거치는 명령의 줄이 아니라, 공간에 펼쳐진 물리적 장의 배열로 다시 설명되어야 한다. 빛과 렌즈를 다루던 일이 곧 사고를 다루는 일이 되는 셈이다. 현재의 사고방식을 전제로 더 빠른 AI를 만드는데 노력할 것이 아니라 지능이 무엇 위에서 구현되는지 근본원리를 되집어보아야 한다. 

  • 6
    평소엔 흐르고 충격엔 스스로 굳는 배터리 전해질을 만들 수 있는가?
    조민재 / 공과대학 전기∙정보공학부

    배터리 전해질은 액체이거나 고체, 둘 중 하나로 여겨져 왔다. 액체는 이온이 잘 흘러 효율이 높지만 충격에 약해 불이 나기 쉽고, 고체는 단단해 안전하지만 이온이 더디게 흘러 효율이 떨어진다. 지금의 기술은 그 둘 사이에서 타협하는 데 머문다. 배터리 안전도 대개 바깥의 보호 회로와 냉각, 사고 뒤의 차단에 기대 왔다.


    그런데 충격을 받는 순간에만 굳고 평소엔 잘 흐르는 물질이 있다. 우블렉처럼, 가하는 힘에 따라 묽어지고 단단해지는 비뉴턴 유체다. 다만 이런 유체는 대개 전기가 통하지 않는다. 여기에 이온이 오갈 길을 열어 전기가 흐르게 만들 수 있을까. 평소에는 이온이 잘 흐르는 액체로 작동하다가, 부딪히거나 찔리는 순간 스스로 굳어 위험의 통로를 닫는 전해질을 상상하는 것이다.


    그러면 안전은 시스템 바깥에 덧붙이는 장치가 아니라, 물질 자체에 새겨진 성질이 된다. 사고가 난 뒤 전류를 끊는 것이 아니라, 사고의 순간 물질이 먼저 길을 막는다. 잦은 충격에 노출되는 전기차와 드론, 항공우주와 웨어러블의 안전 원리가 함께 달라진다. 안전을 시스템 바깥에서 덧붙일 것인지, 물질 스스로 위험에 반응하게 만들 수 있는지의 차이다. 

  • 5
    지식노동의 대체를 결정하는 것은 기술인가, 사회의 합의인가?
    조영준 / 사회과학대학 경제학부

    AI 모델의 성능이 인간을 넘어서는 순간 지식노동은 곧 사라질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진단과 판결, 교육과 연구, 평가와 자문 등의 일을 모두 컴퓨터의 처리 능력만으로 대신할 수 없다. 권위와 책임, 신뢰 및 공정성의 문제가 얽혀있어, 궁극적으로는 사회적 합의가 함께 있어야 한다.


    기술의 역사가 이를 증명한다. 19세기 러다이트의 기계 파괴 운동은 기술에 대한 단순한 반발이 아니라 정당한 노동의 가치 및 환경을 둘러싼 요구였다. 기술의 성숙이 곧장 현장의 대체로 이어지지는 않았고, 사회적 합의와 제도의 변화를 거쳤다. 의사가 진단하고 판사가 판결하며 교수가 가르치고, 전문가가 평가하는 까닭은 단순히 지식 때문만이 아니라, 그 판단에 제도적 책임과 공적 신뢰가 부여되어 있고, 이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있기 때문이다. AI가 더 정확한 답을 내더라도, 사회가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면 대체는 이루어지기 어렵다.


    그렇다면 지식노동이 넘어가는 경계는 모델의 성능이 아니라, 사회가 권위와 책임을 기계에 넘기기로 합의하는 그 시점일 것이다. “기계가 인간보다 더 잘 할수 있는가”가 아니라 “인간이 넘겨주어도 되는가” 또는 “어디까지 넘겨줘야 하는가”로 질문 자체가 달라져야 한다. 무엇을 기계에 맡기고 무엇을 끝내 인간의 책임으로 남길지, 그 선을 누가 어떻게 그을지를 사회가 함께 정해야 한다. 그러나 그 합의를 어떻게 도출할 수 있는지는 아무도 모르고 있다.  

  • 4
    사회와 인공지능 시스템의 안전은 오류를 막는 데 있는가, 오류에서 회복하는 데 있는가?
    조재표 / 공과대학 컴퓨터공학부

    우리는 사회와 인공지능 시스템의 안전을 더 정교한 규칙과 더 강한 통제, 더 완벽한 예측으로 지킬 수 있다고 믿어 왔다. 오류는 없애야 할 예외이고, 좋은 시스템이란 처음부터 실패하지 않는 시스템이라는 생각이 오래 이어졌다.


    그러나 사회도 기술도 끊임없이 흔들린다. 정작 무서운 것은 오류가 생기는 일 자체가 아니라, 잘못된 신호 하나가 플랫폼과 여론, 정책과 알고리즘을 타고 연쇄로 증폭되는 일이다. 작은 오판이 순식간에 사회 전체의 판단을 물들인다. 사람이 더 촘촘한 규칙으로 이 연쇄를 미리 막으려 해도, 예측하지 못한 신호는 늘 새로 생겨난다.


    그렇다면 사회와 인공지능 시스템을 명령과 통제의 체계가 아니라, 오류를 계속 찾아내고 영향이 번지는 범위를 좁히며 스스로 바로잡는 구조로 만들 수 있을까. 잘못이 생겨도 범위를 좁히고, 그 과정을 학습해 다음 판단을 고쳐 가는 시스템이다. 안전을 사전 봉쇄가 아니라 끊임없는 오류 교정의 능력으로 이해하면, AI 안전과 민주주의, 플랫폼 운영과 재난 대응이 하나의 개념틀에서 해석될 수 있다. 이 질문에 답을 얻는다면, 실수해도 무너지지 않고 오히려 배우는 사회로, 통제의 문명에서 복원의 문명으로 넘어가는 새로운 출발선에 설 수 있다.

  • 3
    계산의 열적 한계는 어디까지 낮출 수 있는가?
    최우영 / 공과대학 전기∙정보공학부

    반도체와 AI는 더 많은 정보를 더 빠르게 처리할수록 전력과 발열의 벽에 부딪힌다. 그동안 연구는 소자를 다듬고, 회로를 최적화하며, 냉각능력을 높임으로써 그 한계를 조금씩 뒤로 밀어 왔다. 그러나 계산과 열이 맺는 관계 자체를 근본적으로 의심한 적은 드물었다. 계산에는 으레 열이 따르고, 기술 발전이란 그 발열량을 조금씩 줄여 가는 일이라는 생각은 좀처럼 흔들리지 않았다. 


    정보를 처리하는 가장 작은 동작은 스위치를 켜고 끄는 일이다. 물론 정보 1비트를 지우는 데는 일정량 이상의 에너지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란다우어 원리가 있으며, 이 원리에 따른 최소 에너지도 정해져 있다. 그러나 오늘날의 트랜지스터는 이 이론적 한계보다 수천 배 많은 열을 쏟아 낸다. 발열의 대부분은 계산의 본질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현재의 스위칭 방식이 만들어 낸 군더더기인 셈이다. 그렇다면 스위칭에 드는 에너지를 란다우어 한계에 얼마나 가깝게 줄일수 있을까. 이를 가능하게 할, 기존과 다른 새로운 스위칭 원리는 존재할 수 있을까.


    열적 한계에 가까운 새로운 스위칭 원리를 찾을 수 있다면, 로직과 메모리, AI 가속기와 데이터센터, 나아가 손안의 기기까지 정보처리의 설계 원리가 함께 바뀔 것이다. 그것은 반도체가 따라온 반세기의 로드맵을 처음부터 다시 쓰는 일이기도 하다. 이제는 에너지 효율을 조금 더 개선하는 데 그칠 것이 아니라 현재의 발열 수준을 이론적 한계까지 낮출 수 있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존재하는지 처음부터 다시 물어야 한다. 

  • 2
    스스로 목표를 세우는 인공지능에는 감정이 필요한가?
    최희웅 / 공과대학 전기∙정보공학부

    지능이란 주어진 목표를 달성하는 능력이라는 것이 오랜 전제였다. 지금의 AI는 사람이 정해 준 목표를 잘 푸는 기계다. 알파고에게는 승패가, 언어 모델에게는 사람의 선호가 목표로 주어진다. 목표만 쥐여 주면 놀라운 성능을 내지만, 무엇을 추구할지는 스스로 정하지 못한다. 


    그러나 갓난아이는 누구의 지시도 없이 세상을 탐험한다. 호기심과 놀라움에 이끌려 물건을 떨어뜨려 보고 입에 넣어 보며, 그러는 사이 물리 법칙과 인과를 스스로 익힌다. 무엇을 향할지 정해 준 사람은 없다. 그 자리에는 호기심과 불안, 만족과 애착 같은 내적 신호가 있을 뿐이다. 감정은 행동을 흐리는 잡음이 아니라, 정보가 모자란 상황에서 방향을 정해 주는 장치인 셈이다.


    그렇다면 스스로 목표를 세우는 AI에도 감정에 기반한 내적 신호가 있어야 할까? 감정을 흉내 내자는 것이 아니라 지능의 자기 결정에 내적 신호가 정말 필요한지를 묻는 것이다. 이 질문에 답하려면 감정이 학습에서 무엇을 하는지부터 밝혀야 하기 때문에 공학과 심리학, 신경과학이 모두 필요할 것이다. 무엇을 향해 움직일지 스스로 정하는 기계라면, 그 안전과 책임도 성능이 아니라 목적을 설정하는 동기의 구조에서부터 다시 생각해야 한다. 더 효율적인 AI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인공지능의 다음 세대를 상상하려면 스스로 목표를 정하는 지능에 감정이 꼭 필요한지를 먼저 알아야 한다. 

  • 1
    여러 인공지능의 상호 견제 시스템이 인간의 최종 거부권을 지킬 수 있는가?
    한진모 / 공과대학 전기∙정보공학부

    인공지능을 안전하게 만드는 일은 대개 하나의 거대 모델이 내놓는 답변을 인간의 기준에에 맞게 교정하는 문제로 여겨져 왔다. 모델 하나를 인간의 가치에 충분히 정렬할 수 있다면 인공지능의 위험도 통제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고, 모델의 안전성을 높이기 위한 해법은 주로 한 모델의 출력을 사람이 선호하도록 교정하는 방향에서 탐색되었다.


    그러나 거대 모델은 확률적으로 동작한다. 아무리 촘촘히 통제해도 환각, 뜻밖의 일탈이나 우회 공격의 위험을 완전히 지울 수 없다. 인간 사회는 한 사람의 완전한 선의에 기대기보다, 권력을 나누고 서로를 견제하며 교차로 검증하는 제도를 통해 안정성을 지켜왔다. 불완전한 행위자라도 서로를 독립적으로 감시하게 만들면, 어느 하나가 폭주하거나 모두가 같은 오류에 빠질 가능성을 크게 줄일 수 있다.


    인공지능 안전의 초점을 한 모델의 답변을 통제하는 데서, 여러 인공지능이 판단과 실행 권한을 나누고 서로를 검증하는 시스템을 설계하는 것으로 옮길 수 있을까. 답변의 통제만 강화하며 확률적 모델이 인간의 도덕을 온전히 이해해 주기를 기대하는 대신, 어느 하나도 권한을 독점하지 못하는 다중 인공지능 구조를 통해 더 인공지능 기반 시스템이 더 쉽게 안전해질 수 있을까. 게임이론과 거버넌스 연구를 컴퓨터과학에 들여와, 인간이 위험한 결정 앞에서 마지막으로 멈추고 거부할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는 이론적인 균형점을 찾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