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생명체는 시간 속에서 살아간다. 하나의 수정란은 배아가 되고 성체로 자라며, 끝내 노화를 거쳐 생애를 마친다. 식물은 싹을 틔워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으며, 동물은 발생과 성장, 성숙과 쇠퇴를 따라 한 생을 완성한다. 이 변화는 우연이 아니다. 생명체는 저마다의 시계를 지녔고, 우리는 오랫동안 그것을 거스를 수 없는 자연의 질서로 받아들였다. 생명은 그 시계에 매여 흐름을 거부할 수 없다는 것이 지금까지의 통념이었다.
그러나 최근 생명과학은 이 오래된 통념에 질문을 던진다. 이미 분화를 마친 세포를 초기 상태로 되돌리는 재프로그래밍, 늙은 세포의 기능을 되살리려는 연구, 조직의 발달과 재생을 조절하려는 시도는 생명이라는 열린계에서 시간이 생각보다 훨씬 유연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재생의학과 후성유전학의 진전이 그 가능성을 빠르게 넓혀 왔다. 그렇다면 이 변화는 세포에 머무는가, 아니면 조직과 기관, 개체, 나아가 정신의 차원까지 뻗는가.
이 질문은 역노화로 수명을 얼마나 늘릴 수 있느냐라는 통상의 주제 너머를 지향한다. 생명의 시간을 늦추거나 멈추고, 더 나아가 앞당기거나 되돌리기까지, 모든 방향으로 다룰 수 있는가를 묻는다. 노화의 속도를 조절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발생과 성장, 성숙과 노화를 아우르는 생명의 시간 프로그램을 어떤 원리로 읽고 다시 쓸 수 있는가를 묻고자 한다.
만약 그 시계를 다룰 수 있다면 함의는 크다. 식물에서는 자라고 꽃피고 열매 맺는 때를 정교하게 조절해 식량 생산의 새 길을 열 수 있다. 동물에서는 발생과 생식, 성장을 전혀 새롭게 이해하게 될지 모른다. 인간에게는 병든 조직을 도려내거나 기능을 보조하는 수준을 넘어, 조직과 기관을 병들기 이전의 건강한 상태로 되돌리는 의학이 열릴 수 있다. 병을 고치는 의학에서, 병들기 전으로 시간을 돌리는 의학으로 옮겨 가는 셈이다. 생명을 더 이상 한 방향으로만 흐르는 되돌릴 수 없는 과정으로 보지 않게 될지도 모른다.
이 질문은 몸에만 머물지 않는다. 몸의 시간을 되돌리면 마음의 시간도 함께 되돌아가는가. 신체가 젊어져도 기억과 경험, 통찰, 그리고 정서는 그대로 남는가. 결국 젊어진 몸에 늙은 마음이 깃들 수도 있는가. 생물학적 나이와 정신의 나이는 어떻게 얽혀 있는가. 생명의 시계를 조절한다는 것은 세포를 바꾸는 일을 넘어, 인간의 정신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의 문제이기도 하다.
한국 사회에 이 질문이 갖는 의미는 더욱 크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고령화되어가는 나라로서, 의료와 돌봄, 노동과 복지의 구조가 흔들리는 구조적 변화의 충격을 가장 먼저 겪고 있다. 다른 한편 한국은 줄기세포와 유전체, 재생의학에서 깊은 연구 역량을 쌓아 왔다. 생명의 시계를 다루는 기술이 현실이 된다면, 그것은 의료의 진보에 그치지 않고 세대와 노동, 교육과 복지, 삶 전체를 다시 생각하게 될 것이다. 늙음과 죽음을 정해진 순서로 받아들여 온 사회가, 그 전제를 처음으로 묻게 되는 것이다.
이 질문은 서로 다른 관점이 교차하는 곳에서 해법을 찾을 수 있다. 발생생물학과 노화생물학, 유전체학, 생리학, 재생의학, 약학, 공학은 물론, 그리고 윤리학과 법학, 경제학과 복지학이 한 자리에서 생명과 시간의 관계를 다시 물어야 한다.
생명의 시계를 제어할 수 있는가.
이 질문을 둘러싼 연구는 이미 깊고 넓게 쌓이고 있다. 그러나 그 노력의 대부분은 노화를 늦추거나 특정 조직의 기능을 되살리는 데 향했고, 아직까지도 노화를 어떻게 정의할 것인지에 대해서조차 학문적인 공감대가 만들어지지 않았으며, 생명이 겪는 시간 그 자체를 읽고 능동적으로 조절하는 일은 여전히 학문의 경계 밖에 남아 있다. 노화를 늦추는 연구를 넘어, 생명과 시간의 관계 자체를 새로 이해하는 연구는 가능할까.
서울대학교 그랜드퀘스트는 이 질문을 우리 시대의 중요한 연구 과제로 제안한다. 더 많은 연구자들이 함께 이 질문을 탐구하며, 생명과 시간에 대한 새로운 이해에 한 걸음 더 다가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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