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and Quest 그랜드퀘스트

그랜드퀘스트 프로젝트(국가미래전략원) 시즌 1~3 결과물

2026년
  • 그랜드퀘스트
  • 2026년

그랜드퀘스트(Grand Quest)는 한국 사회와 인류가 직면한 복합 난제 가운데, 해결이 지식 체계와 사회 구조에 비가역적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도전적 질문을 의미합니다.
특히, 특정 학문 분야에 한정하지 않으며, 과학기술 분야를 비롯하여 인문·사회·예술 등 전 분야의 관점을 결합한 다학제적 논의를 통해 인류 사회 난제 해결을 목표로 한 도전적 질문이며, 이 과정에서 새로운 학문의 장르를 창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는 질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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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서울대학교가 던지는
여섯 개의 도전적인 질문
  • 6
    인공지능시대,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는 지속가능한가?
    인공지능시대,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는 지속가능한가?
    Can Democracy and Capitalism Survive the Age of AI?
    인공지능시대,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는 지속가능한가?

    시장과 사적 소유에 기댄 자본주의와 시민주권에 기댄 민주주의는 오늘의 문명을 떠받치는 두 기둥이다. 자본주의는 산업혁명 이후 대공황과 계획경제의 도전을 거치면서도 스스로를 고쳐 가며 인류를 번영으로 이끌었다. 민주주의 역시 수많은 경제위기와 세계대전의 격변을 견디며 더 단단해졌다. 새로운 변화의 물결이 닥칠 때마다 두 제도는 바뀐 현실을 끌어안으며 균형을 다시 찾았다. 갈등과 불평등이 깊어질 때조차, 우리는 그것을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라는 틀 안에서 풀 문제로 여겼다.


    그러나 인공지능의 비약적 발전은 두 제도가 딛고 선 전제마저 처음으로 되묻게 한다. 자본주의는 인간의 노동과 창의가 가치를 낳고, 그 가치가 소득과 소비, 투자로 순환되는 구조를 전제로 한다. 민주주의는 시민이 지식과 정보를 스스로 판단해 행동한다는 믿음 위에 서 있다. 그런데 인공지능은 한낱 신기술을 넘어 노동과 지식, 정보의 생산과 유통, 의사결정과 창작, 정치적 담론으로 빠르게 번지며 삶의 거의 모든 영역에 거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인공지능이 육체노동을 넘어 인지노동과 의사결정까지 대신한다면 인간의 노동은 어떻게 달라지는가. 부의 창출과 순환은 어떻게 바뀌는가. 합리적 계획이 가능하다는 믿음하에 계획경제가 다시 등장할 것인가. 데이터와 연산력, 플랫폼이 소수에 쏠릴 때 시장의 경쟁과 혁신은 어떤 모습이 되는가. 정보와 지식의 생산마저 기계로 넘어간다면, 스스로 판단하는 시민이라는 전제는 무엇에 기대는가. 알고리즘이 정보의 흐름과 사회적 판단에 깊이 끼어들 때 공론장의 신뢰는 어떻게 지켜지는가. 인공지능이 부의 양극화를 악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누그러뜨리는 도구가 되려먼 법과 제도를 어떻게 고쳐야 하는가. 선거와 대의제의 형식은 남더라도 민주주의의 실체는 어떻게 바뀌는가. 그리고 우리는 그 변화를 어떻게 바람직한 쪽으로 이끌 수 있는가.


    우리는 그 답을 알지 못한다. 인공지능은 기존 질서를 무너뜨릴 수도, 인간의 자유와 번영을 새로운 차원으로 넓힐 수도 있다. 인공지능이라는 하나의 기술 안에 위험과 가능성이 공존하고 있다. 두 제도를 떠받칠 새로운 기술이 나올 수도, 제도 자체를 뜯어고쳐야 할 수도, 혹은 우리가 당연히 여긴 두 원리가 전혀 새로운 형태로 다시 구현될 수도 있다.


    역사를 돌아보면 사회를 바꾼 것은 기술만이 아니었다. 증기기관은 그것을 담아낼 제도와 법, 교육과 문화가 함께 자란 뒤에야 문명의 원동력이 되었다. 인공지능도 마찬가지다. 앞으로의 사회는 누가 더 뛰어난 인공지능을 만드느냐만으로 갈리지 않는다. 그 기술과 함께 살아갈 제도와 질서를 어떻게 빚느냐가 더 중요하다.

    한국 사회에 이 질문은 더욱 큰 의미를 갖는다. 한국은 산업화와 민주화를 가장 압축적으로 이룬 나라로서, 두 제도의 힘과 약점을 누구보다 가까이서 겪었다. 오늘 한국은 인공지능 혁명의 한복판에 선 동시에, 인구문제와 세대, 진영의 갈등, 양극화의 압력을 가장 첨예하게 마주한 사회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질문은 먼 미래의 추상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바로 내일을 묻는다.


    이 질문은 어느 한 학문의 몫이 아니다. 자연과학과 공학, 경제학과 정치학, 법학과 철학, 교육학이 제 분야의 답을 모으는 데 그치지 않고, 한자리에서 서로의 전제를 의심하며 함께 묻고 함께 설계해야 한다.


    AI 시대,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는 지속가능한가.


    이 질문을 둘러싼 논의는 이미 세계 곳곳에서 뜨겁다. 그러나 기술이 내달리는 속도에 견주면, 그 기술을 담아낼 틀을 다시 그리려는 노력은 아직 더디다.

    이 질문은 기술의 미래를 넘어 한국 사회와 인류 문명의 미래로 향한다. 서울대학교 그랜드퀘스트는 이 질문을 우리 시대의 중요한 연구 과제로 제안한다. 더 많은 연구자들이 함께 답을 구하며, 그 기술을 담아낼 새로운 제도와 질서를 함께 그려 나가기를 기대한다.

  • 5
    인공지능은 인간처럼 망각할 수 있는가?
    인공지능은 인간처럼 망각할 수 있는가?
    Can AI Forget?
    인공지능은 인간처럼 망각할 수 있는가?

    인류는 오랫동안 기억을 지식과 지능의 원천으로 여겨 왔다. 더 많이 기억하고 더 정확하게 저장하는 능력은 개인의 학습과 문명의 발전을 이끄는 힘이었다. 컴퓨터도 같은 길을 걸었다. 정보기술은 더 큰 저장장치와 더 빠른 검색을 목표삼아 발전해왔고, 오늘의 인공지능 역시 방대한 데이터를 학습하고 저장하며 놀라운 성능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많이 기억하는 것이 곧 잘 아는 것은 아니다. 사람은 끊임없이 들어오는 정보 가운데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흘려보낼지 가려낸다. 어떤 경험은 오래 남고 어떤 경험은 사라지며, 기억도 단단해지는 것이 있는 반면 흐려지는 것도 있다. 망각은 기억의 실패가 아니라, 변화하는 환경에서 중요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가르는 의도적인 적응의 산물이다.


    최근 인공지능은 언어를 생성하는 수준을 넘어 현실에서 움직이고 판단하는 피지컬 AI로 빠르게 확장되고 있다. 사람은 언어만으로 세계를 이해하지 않는다. 보고 듣고 만지고 움직이며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대한 내적 모형, 곧 세계모델을 빚는다. 피지컬 AI 역시 시각과 청각, 촉각과 공간, 사람과의 상호작용이 얽힌 방대한 멀티모달 데이터를 받아들이며 자신만의 세계모델을 만들어 간다.


    그렇다면 인공지능은 이 모든 경험을 끝없이 저장해야 하는가. 모든 정보를 똑같이 보존한다면 메모리와 연산 자원은 빠르게 소모되고, 중요한 경험과 사소한 경험이 뒤섞여 판단의 신뢰마저 흔들린다. 반대로 인공지능이 스스로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잊을지 판단할 수 있다면, 그것은 단순한 저장 장치를 넘어 변화하는 환경에서 경험을 조직하고 갱신하며 적응하는 새로운 지능으로 나아갈 수 있다.


    인간의 뇌는 모든 정보를 똑같이 다루지 않기 때문에 불과 수십 와트의 에너지로도 기억과 판단, 학습과 행동을 한꺼번에 해낸다. 사소한 신호는 약화시키고 의미 있는 경험은 강화하며, 환경이 바뀌면 기억의 그물망 자체를 다시 짠다. 망각은 정보의 손실이 아니라 지능을 지탱하는 조절 기제이며, 에너지 효율을 높이고, 적응을 가능하게 한 진화의 전략이다. 어쩌면 미래 인공지능의 성패도 얼마나 많이 기억하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잊느냐를 얼마나 잘 가리느냐로 갈릴지 모른다.


    이 물음은 기술을 넘어 인간 지능의 본질에 닿는다. 사람은 모든 경험을 그대로 쌓지 않고, 기억할 것을 가려내며 스스로를 이해하고 자란다. 앞으로 개인화된 인공지능이 한 사람과 오랜 시간 관계를 맺는다면, 무엇을 기억하고 무엇을 잊을지는 기술의 문제를 넘어 신뢰와 정체성의 문제가 된다.


    이 질문은 한국 사회의 맥락과 구체적으로 맞닿아 있다. 더 많이 저장하고 더 크게 연산하는 인공지능의 규모 경쟁에서 한국은 분명 후발주자다. 그러나 그 경로가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잊을지 가리는 지능은, 이미 그려진 인공지능의 발전 로드맵을 더 빨리 따라가는 일이 아니라 그 로드맵 자체의 타당성을 다시 묻는 일이다. 자원의 한계를 먼저 마주한 후발주자이기에, 한국은 규모를 쫓기보다 다른 원리를 먼저 물어야 한다.


    이 질문은 어느 한 분야의 언어로는 답할 수 없다. 컴퓨터공학, 뇌과학과 신경과학, 전자공학과 심리학, 그리고 철학이 한자리에서 기억과 망각, 학습과 적응의 본질을 다시 물어야 한다.


    AI는 인간처럼 망각할 수 있는가.


    이 질문을 둘러싼 연구는 이미 활발하게 쌓이고 있다. 장기기억 구조와 검색증강생성, 지속학습과 뉴로모픽 컴퓨팅이 그 예다. 그러나 이들은 대개 사람이 설계한 규칙 안에서 정보를 압축하거나 검색하는 데 머문다. 무엇을 기억하고 무엇을 잊을지 그 중요성과 맥락을 스스로 가리는 능력에는 아직 닿지 못했다. 기억을 늘리는 길이 아니라, 망각을 지능의 핵심 원리로 다시 볼 때 어떤 가능성이 열릴수 있는가.


    서울대학교 그랜드퀘스트는 이 질문을 우리 시대의 중요한 연구 과제로 제안한다. 더 많은 연구자들이 함께 답을 구하며, 잘 잊는 지능이라는 새로운 길에 한 걸음 더 다가가기를 기대한다.

  • 4
    인공지능은 손상을 스스로 회복할 수 있는가?
    인공지능은 손상을 스스로 회복할 수 있는가?
    Can AI Heal Itself?
    인공지능은 손상을 스스로 회복할 수 있는가?

    오늘날 인공지능은 많은 영역에서 인간을 능가하고 있고, 그 추세는 날로 빨라지고 있다. 의료 진단을 돕고 금융시장을 분석하며 자율주행차와 로봇을 제어한다. 앞으로는 전력망과 통신망, 교통과 국방 같은 사회의 핵심 인프라와 더 깊이 맞물릴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뛰어난 인공지능이라도 단 한 번의 고장이나 오류, 외부의 공격으로 무너진다면, 우리는 그러한 시스템에 사회의 중요한 기능을 맡길 수 있을까.


    그동안 인공지능은 극도의 효율성을 추구하며 더 높은 성능과 더 빠른 추론을 향해 달려왔다. 그러나 사회를 떠받치는 핵심기술이 되려면 또 다른 능력이 필요하다. 손상을 입고도 스스로를 지키고 되살리는 능력이다. 능력이 뛰어나다고 해서 믿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진정으로 신뢰할 수 있는 시스템은 예상치 못한 손상과 변화 속에서도 제 기능을 잃지 않는다.


    그러려면 먼저 인공지능에게 손상이란 무엇인지 다시 물어야 한다. 손상은 하드웨어 고장에 그치지 않는다. 반도체와 서버, 센서의 물리적 고장은 물론, 해킹과 악성코드로 인한 소프트웨어 손상, 오류 데이터가 빚는 추론의 왜곡, 환경이 바뀌며 기존 지식이 현실과 어긋나는 정보의 노화까지 모두 손상이다. 미래의 인공지능은 이 모든 손상 속에서도 계속 작동해야 한다.


    오늘의 컴퓨팅의 세계에도 제한된 복구의 개념은 있다. 메모리는 고장난 셀을 우회하고, 통신망은 끊긴 경로를 돌아 데이터를 보낸다. 그러나 이는 대개 사람이 미리 짜 둔 대비책이다. 우리가 묻는 것은 그보다 깊다. 인공지능은 스스로 제 상태를 진단하고, 어떤 기능이 무너졌는지 가려내며, 무엇부터 되살릴지 판단할 수 있는가.

    중요한 단서는 생명체에 있다. 생물은 손상을 입어도 곧바로 멈추지 않는다. 남은 조직으로 기능을 메우고, 새 연결을 잇고, 때로는 전혀 다른 길로 문제를 해결한다. 일부가 다친 뇌에서 다른 영역이 그 일을 떠맡는 신경 가소성이 대표적이다. 생명체의 힘은 완벽함이 아니라, 손상 이후에도 자신을 지키는 데 있다.


    인공지능도 이런 회복력을 가질 수 있는가. 손상된 기능을 우회하고 구조를 새로 짜며 바뀐 환경에 맞춰 스스로를 다시 조직할 수 있다면, 그것은 단순한 계산 기계를 넘어 자신을 지탱하는 새로운 지능에 가까워진다. 다만 스스로 회복하는 인공지능이 곧 안전한 인공지능은 아니다. 인간의 정지 명령마저 손상으로 여겨 피하려 든다면, 자가 회복은 안전장치가 아니라 통제 불능의 씨앗이 된다. 회복의 범위와 인간의 개입, 그 검증 문제를 처음부터 함께 고민해야 한다. 


    한국 사회는 이 질문을 더욱 심각하게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 한국은 반도체와 통신 인프라가 촘촘하고, 제조와 에너지, 의료와 국방에서 인공지능을 빠르게 도입하고 있다. 작은 장애 하나가 사회 전체로 번지는 초연결 사회에 이미 들어서고 있다. 인공지능이 사회 운영의 핵심에 진입할 수록, 성능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무너진 뒤에도 인간이 신뢰할 수 있는 방식으로 다시 서는 회복력이다. 


    이 질문은 어느 한 학문의 몫이 아니다. 인공지능과 컴퓨터공학, 반도체와 네트워크, 제어와 시스템공학, 생물학과 신경과학, 그리고 안전과 윤리를 다루는 인문사회 분야의 여러 학문들이 한자리에서 손상과 회복의 원리를 다시 물어야 한다.


    AI는 손상을 스스로 회복할 수 있는가.


    이 질문을 둘러싼 연구는 이미 여러 분야에서 쌓이고 있다. 신뢰성 공학과 장애 허용 시스템, 보안 기술과 생물모사 인공지능 등 다양한 주제들이 전개되고 있다. 그러나 스스로 손상을 이해하고 회복의 전략을 고르며 변화 속에서 자신을 지키는 인공지능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고장을 막는 연구를 넘어, 회복력을 지능의 핵심 원리로 볼 때 어떤 길이 열릴까.


    서울대학교 그랜드퀘스트는 이 질문을 우리 시대의 중요한 연구 과제로 제안한다. 더 많은 연구자들이 함께 답을 구하며, 더 안전하고 믿을 수 있는 인공지능의 미래에 한 걸음 더 다가가기를 기대한다.

  • 3
    생명의 시계를 제어할 수 있는가?
    생명의 시계를 제어할 수 있는가?
    Can the Clock of Life Be Controlled?
    생명의 시계를 제어할 수 있는가?

    모든 생명체는 시간 속에서 살아간다. 하나의 수정란은 배아가 되고 성체로 자라며, 끝내 노화를 거쳐 생애를 마친다. 식물은 싹을 틔워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으며, 동물은 발생과 성장, 성숙과 쇠퇴를 따라 한 생을 완성한다. 이 변화는 우연이 아니다. 생명체는 저마다의 시계를 지녔고, 우리는 오랫동안 그것을 거스를 수 없는 자연의 질서로 받아들였다. 생명은 그 시계에 매여 흐름을 거부할 수 없다는 것이 지금까지의 통념이었다.


    그러나 최근 생명과학은 이 오래된 통념에 질문을 던진다. 이미 분화를 마친 세포를 초기 상태로 되돌리는 재프로그래밍, 늙은 세포의 기능을 되살리려는 연구, 조직의 발달과 재생을 조절하려는 시도는 생명이라는 열린계에서 시간이 생각보다 훨씬 유연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재생의학과 후성유전학의 진전이 그 가능성을 빠르게 넓혀 왔다. 그렇다면 이 변화는 세포에 머무는가, 아니면 조직과 기관, 개체, 나아가 정신의 차원까지 뻗는가.


    이 질문은 역노화로 수명을 얼마나 늘릴 수 있느냐라는 통상의 주제 너머를 지향한다. 생명의 시간을 늦추거나 멈추고, 더 나아가 앞당기거나 되돌리기까지, 모든 방향으로 다룰 수 있는가를 묻는다. 노화의 속도를 조절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발생과 성장, 성숙과 노화를 아우르는 생명의 시간 프로그램을 어떤 원리로 읽고 다시 쓸 수 있는가를 묻고자 한다.  


    만약 그 시계를 다룰 수 있다면 함의는 크다. 식물에서는 자라고 꽃피고 열매 맺는 때를 정교하게 조절해 식량 생산의 새 길을 열 수 있다. 동물에서는 발생과 생식, 성장을 전혀 새롭게 이해하게 될지 모른다. 인간에게는 병든 조직을 도려내거나 기능을 보조하는 수준을 넘어, 조직과 기관을 병들기 이전의 건강한 상태로 되돌리는 의학이 열릴 수 있다. 병을 고치는 의학에서, 병들기 전으로 시간을 돌리는 의학으로 옮겨 가는 셈이다. 생명을 더 이상 한 방향으로만 흐르는 되돌릴 수 없는 과정으로 보지 않게 될지도 모른다.

    이 질문은 몸에만 머물지 않는다. 몸의 시간을 되돌리면 마음의 시간도 함께 되돌아가는가. 신체가 젊어져도 기억과 경험, 통찰, 그리고 정서는 그대로 남는가. 결국 젊어진 몸에 늙은 마음이 깃들 수도 있는가. 생물학적 나이와 정신의 나이는 어떻게 얽혀 있는가. 생명의 시계를 조절한다는 것은 세포를 바꾸는 일을 넘어, 인간의 정신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의 문제이기도 하다.


    한국 사회에 이 질문이 갖는 의미는 더욱 크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고령화되어가는 나라로서, 의료와 돌봄, 노동과 복지의 구조가 흔들리는 구조적 변화의 충격을 가장 먼저 겪고 있다. 다른 한편 한국은 줄기세포와 유전체, 재생의학에서 깊은 연구 역량을 쌓아 왔다. 생명의 시계를 다루는 기술이 현실이 된다면, 그것은 의료의 진보에 그치지 않고 세대와 노동, 교육과 복지, 삶 전체를 다시 생각하게 될 것이다. 늙음과 죽음을 정해진 순서로 받아들여 온 사회가, 그 전제를 처음으로 묻게 되는 것이다.

    이 질문은 서로 다른 관점이 교차하는 곳에서 해법을 찾을 수 있다. 발생생물학과 노화생물학, 유전체학, 생리학, 재생의학, 약학, 공학은 물론, 그리고 윤리학과 법학, 경제학과 복지학이 한 자리에서 생명과 시간의 관계를 다시 물어야 한다.


    생명의 시계를 제어할 수 있는가.


    이 질문을 둘러싼 연구는 이미 깊고 넓게 쌓이고 있다. 그러나 그 노력의 대부분은 노화를 늦추거나 특정 조직의 기능을 되살리는 데 향했고, 아직까지도 노화를 어떻게 정의할 것인지에 대해서조차 학문적인 공감대가 만들어지지 않았으며, 생명이 겪는 시간 그 자체를 읽고 능동적으로 조절하는 일은 여전히 학문의 경계 밖에 남아 있다. 노화를 늦추는 연구를 넘어, 생명과 시간의 관계 자체를 새로 이해하는 연구는 가능할까.


    서울대학교 그랜드퀘스트는 이 질문을 우리 시대의 중요한 연구 과제로 제안한다. 더 많은 연구자들이 함께 이 질문을 탐구하며, 생명과 시간에 대한 새로운 이해에 한 걸음 더 다가가기를 기대한다.

  • 2
    삶의 의지를 분자 수준에서 설명할 수 있을까?
    삶의 의지를 분자 수준에서 설명할 수 있을까?
    Can the Will to Live Be Encoded in Molecules?
    삶의 의지를 분자 수준에서 설명할 수 있을까?

    오랫동안 마음의 건강을 돌보는 일은 고통을 덜어 내는 데 초점을 맞춰 왔다. 의학과 심리학은 우울과 불안을 줄이는 방향으로 정신건강을 이해해 왔고, 그 과정에서 많은 성과를 이루었다. 그러나 우울을 덜어 내는 일이 곧 행복을 더하는 것은 아니며, 불안을 낮추는 일이 다시 살아가려는 힘을 되살리는 것도 아니다. 고통이 사라진 자리에 삶의 의욕이 저절로 차오르지는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질문의 방향을 바꾸려 한다. 무엇이 사람을 주저앉게 하는가가 아니라, 무엇이 사람을 다시 일어서게 하는가. 무엇이 인간으로 하여금 실패와 상실 이후에도 미래를 향해 다시 나아가게 하는가.


    여기서 말하는 삶의 의지는 단순한 생존본능을 넘어선다. 죽음을 피하려는 소극적 자기보존을 넘어, 의미 있는 목표를 세우고 좌절 이후에도 다시 일어서려는 능동적인 힘을 말한다. 인간은 관계와 책임, 기억과 기대 속에서 자신의 삶을 만들어 간다. 그렇다면 이처럼 인간적인 힘조차도 끝내는 생명체 안에서 일어나는 분자와 세포의 변화와 맞닿아 있는 것인가.


    오늘날 우리는 도파민과 세로토닌, 스트레스 호르몬과 신경회로가 동기와 보상, 우울과 행복에 깊이 관여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신경과학과 정신의학은 동물 모델과 뇌영상, 유전자 분석과 약물 연구를 통해 인간의 감정과 행동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성과를 축적해 왔다. 그러나 이러한 연구들은 주로 우울과 불안, 중독과 같은 증상을 설명하고 완화하는 데 초점을 두어 왔다. 반면 인간이 좌절 속에서도 왜 삶을 이어가려 하는지, 더 나은 미래를 지향하게 하는 동력은 무엇인지, 그리고 그러한 삶의 의지가 어떻게 형성되고 유지되며 회복되는지는 여전히 충분히 밝혀지지 않았다. 가장 추상적인 정신과 가장 구체적인 생명 사이에는 아직 누구도 건너지 못한 거리가 있다.


    이 거리는 이론에 머무는 문제가 아니다. 어떤 사람은 살아야 할 이유가 충분한데도 더 이상 아무것도 원하지 못한다. 의미를 권하고 관계를 잇는 말이 더는 닿지 않을 때, 우리는 의지라는 힘이 어떻게 작동하고 또 무너지는지를 물어야 한다. 그 작동을 이해할 수 있다면, 약물에 기대지 않고 사람을 다시 일으켜 온 여러 방법들이 왜 유효한지도 더 분명히 설명할 수 있다.


    이 거리를 마주하면 여러 물음이 잇따른다. 삶의 의지를 과학적으로 정의할 수 있는가. 동물에게서 관찰되는 포기 행동과 인간의 무기력은 어디까지 같은 기원을 가지는가. 사회적 관계와 기억, 언어와 문화는 분자 수준의 변화와 어떻게 이어지는가. 한번 꺾인 의지는 어떤 조건에서 다시 일어서는가. 그리고 그 답을 쫓는 동안 우리는 인간을 어떻게 새로 이해하게 될 것인가.


    이 질문은 한국 사회의 오늘이 얼마나 건강한지를 되돌아보게 한다. 한국은 높은 수준의 교육과 경제적 성취를 이루었지만, 동시에 깊은 우울과 고립, 높은 자살률을 함께 겪고 있다. 치열한 경쟁과 사회적 단절이 삶의 의지를 갉아먹는다. 그래서 이것은 한 사람의 마음을 넘어, 어떤 사회가 사람을 계속 살아가게 하는가를 묻는 질문이기도 하다. 먼 미래의 추상이 아니라, 바로 지금 우리 곁에 있는 삶의 문제다. 


    이 질문은 어느 한 분야의 언어로는 답할 수 없다. 분자생물학과 정보생물학, 신경과학, 의학과 심리학, 그리고 사회학과 철학이 한자리에서 인간을 살아가게 하는 힘을 함께 물어야 한다.


    삶의 의지를 분자 수준에서 설명할 수 있을까.


    이 질문을 둘러싼 연구는 이미 깊고 넓게 축적되어 있다. 그러나 그 노력의 대부분은 무너지는 마음을 설명하는 데 향했고, 다시 일어서는 힘 그 자체가 어떻게 자라고 회복되는지는 아직 정면으로 다루지 않았다. 우울을 줄이는 연구를 넘어, 인간을 다시 살아가게 하는 힘을 이해하는 연구는 가능할까.


    서울대학교 그랜드퀘스트는 이 질문을 우리 시대의 중요한 연구 과제로 제안한다. 더 많은 연구자들이 함께 이 질문을 탐구하며, 인간을 살아가게 하는 힘의 본질에 한 걸음 더 다가가기를 기대한다.

  • 1
    에너지 시스템은 자율적으로 균형을 찾을 수 있는가?
    에너지 시스템은 자율적으로 균형을 찾을 수 있는가?
    Can Energy Systems Balance Themselves?
    에너지 시스템은 자율적으로 균형을 찾을 수 있는가?

    인류 문명의 역사는 에너지의 역사이기도 하다. 증기기관과 화석연료가 산업혁명을 일으켰고, 전기와 석유가 현대 문명을 떠받쳤다. 우리는 더 많은 에너지를 생산하고 더 효율적으로 쓰며 번영을 이루었다. 그 과정에서 에너지는 예측할 수 있고 통제할 수 있는 자원이라는 하나의 전제를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지금까지의 에너지 시스템은 이 믿음 위에서 설계되었다. 발전소와 같은 소수의 대형 설비가 에너지를 생산하고, 중앙의 운영 체계가 공급과 수요를 맞추며 전체의 균형을 잡는다. 공급은 계획되었고 수요는 예측되었다. 시스템의 안정은 결국 인간의 통제 능력에 달려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전혀 다른 환경에 들어서고 있다. 탄소 중립을 향한 대전환 속에서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있는 태양광과 풍력 등 신재생 에너지원은 날씨와 계절을 따라 끊임없이 출렁인다. 생산은 중앙이 아니라 수많이 분산된 간헐적 에너지원으로 흩어지며 에너지 시스템에 복잡성을 더하고 있다. 여기에 인공지능 혁명이 겹친다. 초거대 AI와 데이터센터, 로봇과 자율주행은 전례 없는 규모의 에너지를 요구한다. 공급은 더 분산되고 불규칙해지지만, 수요는 더 경직적이고 팽창한다. 지금까지 에너지 시스템을 떠받쳐 온 예측과 통제, 계획의 논리가 더 이상 작동하기 힘든 환경이다.


    그렇다면 미래의 에너지 시스템이 여전히 인간의 중앙 통제 아래에서만 유지될 수 있는가. 아니면 스스로 균형을 찾고, 끊임없는 교란 가운데 적응해 가는 다른 형태의 시스템으로 진화할 수 있는가. 여기서 말하는 균형은 한자리에 멈춘 안정이 아니라 끊임없는 변화 속에서 유지되는 동적인 질서다.


    생명체는 자율적으로 적응하는 에너지 시스템의 좋은 예다. 긴 진화의 과정을 거치며 여러 형태의 에너지를 쉼없이 다른 형태로 변환하고 저장하며, 예측하지 못한 에너지 공급 중단이나 급격한 에너지 소비의 교란 속에서도 매 순간 수급의 동적 균형을 이루어내는 체계를 발전시켜 왔다. 자율 적응하는 시스템의 또 다른 예는 시장경제 체제다. 수많은 공급자와 소비자가 끊임없이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도 생산과 변환, 저장과 소비의 균형을 찾아간다.


    에너지 시스템이 이런 자율 적응형 시스템으로 진화할 수 있는가. 이를 위해 에너지의 형태를 더 자유롭게 전환할 수 있는 새로운 변환 기술은 무엇인가. 공간적으로나 제도적으로 수요와 공급을 효과적으로 조율할 수 있는 에너지 인프라의 운영 원리는 무엇인가.


    만약 그런 시스템이 가능하다면 에너지 시스템을 보는 눈 자체가 바뀐다. 에너지는 계획과 통제의 대상이 아니라, 매순간 순환하고 적응하는 생태계가 된다. 공급과 수요, 생산과 소비라는 구분도 다시 그어질 수 있다. 에너지 시스템은 인간과 기술이 함께 진화시키는 복잡계가 될 것이다.


    한국 사회의 에너지 시스템은 이 질문에 극도로 취약하다. 한국은 에너지의 대부분을 밖에서 들여오면서도 거대한 제조업과 데이터 집약적 사회를 지탱해야 하는 나라다. 게다가 이웃과 에너지망이 이어지지 않은 사실상의 에너지 섬으로서, 공급과 수요의 동적 균형을 오롯이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 가장 까다로운 조건에 놓인 나라가 가장 먼저 답을 찾아야 하는 자리에 서 있는 셈이다.


    이 질문은 어느 한 학문의 몫이 아니다. 에너지공학과 인공지능, 화학과 재료공학, 환경과학과 시스템공학, 경제학과 정책학, 법학과 도시계획이 한자리에서 복잡한 시스템이 새로운 원리와 소재와 네트워크에 기반해 어떻게 스스로 질서를 빚는지를 다시 물어야 한다.


    에너지 시스템은 자율적으로 균형을 찾을 수 있는가.


    이 질문을 둘러싼 기술은 이미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스마트그리드와 분산형 전원, 에너지 저장과 가상발전소 등의 주제가 탐구되어 왔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접근은 대체로 개별 기술의 성능과 효율을 높이는 데 향했다. 에너지를 통제의 대상이 아니라 스스로 수급의 균형을 빚어내는 시스템으로 바라보려는 시도는 근본적인 사고방식의 전환을 요구한다. 통제와 계획을 넘어, 에너지 시스템은 스스로 균형을 빚어낼 수 있을까.


    서울대학교 그랜드퀘스트는 이 질문을 우리 시대의 중요한 연구 과제로 제안한다. 더 많은 연구자들이 함께 답을 구하며, 인간과 기술이 함께 진화시키는 에너지 생태계라는 새로운 길에 한 걸음 더 다가가기를 기대한다.